[지금, 이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아.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찬실이는 복도 많네.” 소리꾼 이희문이 부른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엔딩곡이다.

집도 없고 돈도 없는데, 설상가상 청춘도 가버리고 연인도 생기지 않는데, 찬실(강말금 분)이가 복도 많다니. 상식적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관객 입장에서는 이 점이 궁금하다. 누군가는 반어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김초희 감독은 실제와 반대되는 표현으로 ‘찬실이는 복도 없지’를 전하고 싶었던 거라고. 한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떨까. 당신도 나처럼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이 제목은 아이러니의 효과로 어설픈 웃음을 유발하려는 의도에서 붙여진 게 아니라고.

노래처럼 찬실이는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청춘도 가버리고 연인도 생기지 않는 게 맞다. 영화 프로듀서로 오래 일했던 그녀는 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마흔이 된 지금은 산동네 셋집살이 중. 생계는 배우 소피(윤승아 분)네 가사도우미로 아르바이트하며 근근이 꾸려 간다. 그런 찬실의 눈에 소피를 통해 알게 된 남자 김영(배유람 분)이 들어온다.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누나 이상으로는 여기지 않는다. 찬실에게 봄날은 도무지 찾아오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도 그녀는 복이 많은 게 사실이다. 내가 보기에 ‘찬실이는 복도 많지’ 앞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역접의 관용구가 생략돼 있다.

찬실이가 왜 복이 많은가? 그녀를 아끼는 사람이 많아서다. 주인집 할머니(윤여정 분)는 찬실에게 밥을 지어 주고, 유령으로 출몰하는 홍콩 배우 장국영(김영민 분)도 그녀를 응원한다. 찬실을 누나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김영도 그녀가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찬실에게 가사도우미 일당을 주는 소피도 그녀에게 살갑다. 그러니까 찬실이는 (인)복이 많은 것이다. 김초희 감독 본인이 그렇게 생각할 듯싶다.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가 짙게 깔려 있으니까. 김초희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가진 게 많고 일이 잘 풀리면 복이 많다고들 하지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만 있어도 복”이라고.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그 복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그것은 당연히 사람들로부터 비롯된다. 돈도 명성도 보장해 주기 어려운 감독의 첫 장편 영화에 기꺼이 참여해 준 능력 있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없었다면, 이 작품이 이 정도의 높은 완성도로 제작됐을 리 없다. 김초희 감독은 복도 많지. 이를 증명하듯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 모두 찬실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혼자라고 절망하던 순간에도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장국영은 수호천사처럼 찬실을 격려한다. “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봐요.” 상투적인 말인데 이상하게 상투적인 말로 들리지 않는다. 어쩐지 복이 많음에도 그 복을 모르고 사는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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