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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상상이 건드리는 짜릿함

알랭 코르노를 기억하는 한국 관객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아침’, ‘사강의 요새’ 정도가 알려졌을 뿐, 그는 긴 감독 생활 동안 인상적인 작품을 많이 연출하지 못했다. 몇 해 전 그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러브 크라임’을 유작으로 남겼다. 여자 상사와 부하의 미묘한 관계와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였다.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은 ‘러브 크라임’에 미련이 생겼던 것일까. 제작자는 스릴러의 거장 브라이언 드 팔마에게 리메이크를 부탁했고, 자기 색채를 유지한 드 팔마는 원작과 전혀 다른 인상의 결과물로 답했다.

도입부에서부터 ‘패션: 위험한 열정’(Passion)의 마력은 스크린 위로 흘러나온다. 드 팔마와 오랜 인연을 지닌 음악가 피노 도나지오의 익살맞은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노트북 앞에 두 여자가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 세련된 금발의 크리스틴(레이철 매캐덤스)과 촌티를 벗지 못한 흑발의 이사벨(누미 라파스). 그들은 웃으며 말을 나누지만, 여기서 노트북과 대화는 별 의미가 없다. 카메라는 야릇한 표정 속에 팽팽한 긴장을 숨긴 두 여자의 꿍꿍이에 귀를 기울인다. 훔쳐보는 것만큼 짜릿한 것은 없다. 게다가 드 팔마는 그것의 결과가 얼마나 위험하고 허망한지 아는 사람이다.

사건의 미스터리한 전개를 꼼꼼하게 신경 쓴 원작과 비교해 보면, ‘패션’은 이상심리의 흐름에 치중한다. 후반부에 이르면 구멍이 보일 정도로 엉성하기는 하지만 영화적으로 매력적인 건 ‘패션’ 쪽이다. 드 팔마는 빈틈을 상상이란 재료로 메우는데, 그 상상이 불온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영화는 더 힘을 발휘한다. ‘패션’의 백미는 제롬 로빈스가 생전에 안무를 짠 발레 ‘목신의 오후’다. 영화 내내 전광판과 포스터 등으로 홍보되던 발레가 영화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드 팔마는 특유의 화면 분할을 시작한다. 이례적으로 긴 분할 장면은 단순히 스타일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넘어, 인물의 시선이 보는(혹은 본다고 착각하는) 것과 관객의 시선 중 과연 어느 게 진실인지 내기를 건다. 이것이 이야기보다 이미지의 트릭을 사랑하는 드 팔마가 자기 영화를 차별화하는 방식이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는 고전적인 신경증 이야기와 손을 잡는다. 비현실적인 조명, 인물을 갑갑하게 구속하는 카메라, 불안한 음악이 겹치면서 스크린 위의 상황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현실과 상상이 뒤섞이고 몰래카메라와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면서 ‘패션’은 복잡한 결말로 치닫는다. 지독하게 거창하고 인위적인 클라이맥스에서 드 팔마는 금발 취향의 승리를 선언하고 있으며, 하늘에 있는 히치콕과 샤브롤이 혹시 이 장면을 본다면 박수를 치며 낄낄거렸을 법하다. 105분. 14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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