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시하게 되는 사람은 아무래도 딜런이다. 마술사들은 딜런을 비웃듯이 사건을 저지른 뒤 날렵하게 사라지고, 마술에 관한 전문가가 등장해 그의 무지함을 지적하며 끊임없이 잘난 척한다. 문제는 포 호스맨이 옛날 멜리에스처럼 아날로그 마술사가 아니란 점이다. 첨단 디지털 기술로 중무장한 그들의 마술을 설명하거나 푼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디지털로 채색된 영화가 눈속임을 더욱 강화한다. 이중의 눈속임. 장점으로 보이는 이것은 기실 영화의 단점이다. 포 호스맨은 “가까이할수록 더 조금 보인다”고 말한다. 글쎄, 마술사의 소매 아래보다 마음속이 더 궁금할 필요까지 있을까. 너무 앞서 가면 누군가는 따라가거나 믿기를 포기하기 마련이다.
포 호스맨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4명의 기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들 각자가 상징하는 바는 영화 내에서 직접적인 의미가 없다. 진짜 흥미로운 존재는 영화 내내 숨겨진 다섯 번째 기사의 정체다. ‘나우 유 씨 미’라는 제목이 지시하듯 숨겨진 존재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독 루이스 리터리어는 체코 영화의 고전 ‘다섯 번째 기사는 불안’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으로 인해 불안의 정점에 오를 즈음에야 ‘나우 유 씨 미’는 다섯 번째 기사를 소개한다. 영리하고 재미있는 영화지만 극 중 포 호스맨의 신출귀몰한 마술만큼은 아니다. 뤼미에르적인 것과 멜리에스적인 것의 억지스러운 결합 대신, 단순히 보는 행위에 대해 도전적인 시도를 펼쳤더라면 좀 더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자기 마술에 도취된 마술사는 정작 자신이 얼마나 우스운 광대인지 모르는 법이다. 115분. 2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