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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바라:축복’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선택한 ‘바라:축복’은 신비하고 몽환적인 전설과도 같은 작품이다. 인도의 전통 춤을 매개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주된 줄거리로 풀어 가는 방식은 물론 자연주의적인 영상미를 강조한 것도 설화 같은 느낌을 더한다. 부탄의 고승이자 영화감독인 켄체 노르부 감독은 인도의 저명한 소설가 수닐 강고파디아이의 단편 소설 ‘피와 눈물’을 바탕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부탄 영화 사상 처음으로 해외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만큼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껏 보아 온 영화들과는 다른 신선함과 독특한 매력을 갖춘 것이 큰 미덕이다.

‘바라:축복’
감독은 인도 남부지방의 전통 춤인 바라타나티암을 기본 소재로 신분의 굴레를 뛰어넘은 남녀의 사랑에 멜로를 덧입혀 요령껏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의 균형을 잡았다. 아울러 카스트제도의 불합리성과 빈부 격차의 문제도 짚는다. 공간적인 배경은 인도의 자그마한 시골 마을로, 힌두 사원 바라타나티암 무희의 딸 릴라(사하나 고스와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릴라는 조각가를 꿈꾸는 하층 계급 청년 샴(다베시 란잔)의 요청으로 그가 만드는 여신상의 모델이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마을의 지주가 릴리를 짝사랑하게 되고 결국 마을 촌장 수바에게 샴과의 관계가 발각된 릴리는 어머니와 샴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결심한다.

줄거리만 보면 지극히 통속적이지만 감독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헌신을 택한 릴라를 통해 신을 향한 구도자의 길을 이야기한다. 이 때문에 이 작품에서 릴라가 추는 바라타나티암춤은 중요한 상징이다. 릴라는 이 춤을 추면서 크리슈나 신을 만나는 상상을 하게 되고, 샴이 만들고자 했던 여신상도 바라타나티암의 춤동작을 하고 있다.

매력적이고 능숙하게 춤 솜씨를 뽐낸 인도 출신 여배우 사하나 고스와미는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는 것처럼 인도에서는 많은 소녀들이 춤을 배운다. 나 역시 다른 지역의 춤을 10년 동안 배웠기 때문에 이 춤의 기본기를 익숙하게 다졌다”면서 “소녀였던 릴라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연기했다”고 말했다. 현재 동굴 수행 중이어서 영화제 행사에 불참한 감독은 영상을 통해 “인도의 전통 무용을 보며 항상 감탄해 왔다. 춤을 매개로 인도 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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