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순하거나 무거운 역할을 주로 했는데 처음 해 보는 센 캐릭터였어요. 마준규는 제가 배우로 활동하면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인물이죠. ‘연예인병’에 걸려 매니저에게 욕을 하거나 선후배, 팬들에게 가식적으로 행동하기도 하고요. 얄미워서 한 대 때려 주고 싶다가도 귀엽고 재밌기도 했어요.(웃음)”
정경호와 하정우는 7년 전 부산영화제에서 함께 영화를 만들어 내려오면 좋겠다고 농담처럼 얘기했던 것이 결국 현실이 됐다. 하정우는 작년 이맘때쯤 정경호가 군에서 제대하자 ‘너를 두고 썼고, 너밖에 할 수 없다’면서 ‘롤러코스터’의 시나리오를 내밀었다.
“대본을 읽자마자 바로 하자고 했어요. 정우 형은 놀라면서도 고마워했죠. 형도 모든 작품을 그렇게 선택했고 앞으로도 너무 재거나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관계를 가장 중시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제대 이후 많이 불안하고 초조했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고3 때 중앙대 연극학과에 재학 중인 하정우의 공연을 보고 후배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정경호. 그는 “그때 정우 형은 사람이 컸고 서 있는 모습이 굉장히 멋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독과 배우로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그는 “혹시 연기 못하는 후배로 보일까 봐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세 달 동안 매일 아침 7시부터 감독과 배우들이 모여 대본 리딩 연습을 했어요.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지루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배우들끼리의 호흡이 무척 중요했거든요. 이번에 정우 형에게 준비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세를 배웠어요. 감독 하정우는 세심하고 치밀하지만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이죠.”
마준규뿐만 아니라 비행기의 승무원, 승객들은 과장되고 만화 같은 캐릭터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애매한 신체 부위에 사인을 요구하는 ‘진상팬’ 등은 웃음을 유발한다.
“물론 저와 정우 형의 경험담도 들어 있죠. 공공장소에서 뽀뽀를 해 달라거나 속옷에 사인을 해 달라는 팬, 집 앞 호프집에서 제가 출연한 영화에 투자를 했다면서 뜬금없이 인사를 시키시는 분들도 종종 있어요.”
그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목욕탕집 남자들’ ‘부모님 전상서’ ‘엄마가 뿔났다’ ‘천일의 약속’ 등을 연출한 정을영 PD의 아들이다. 하정우가 유독 정경호를 챙겼던 것은 정 PD가 자신의 아버지인 배우 김용건과 절친한 사이였던 것도 한몫했을 터. 하지만 정 PD는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정경호가 스타덤에 올랐을 때도 아들이 배우가 되는 것을 결사반대했다.
“아버지는 제가 한두 번 하다가 연기를 그만둘 줄 아셨나 봐요. 그런데 이번에 영화 ‘롤러코스터’를 보시고는 ‘노력하는 배우가 돼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배우 생활 10년 만에 처음 듣는 말이었죠. 아버지의 마지막 작품은 의리상 꼭 제가 출연해야죠(웃음).”
결론적으로 ‘롤러코스터’는 B급 정서를 담은 하정우식 코미디다. 정경호는 “정우 형이 배우로 설 때보다 몇 배 더 긴장하는 것 같다. 앞으로 결코 대중을 벗어나지 않는 특별한 감독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역시 이 작품을 통해 도약을 꿈꾸고 있다. “늘 그 나이대에서 가장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 제 목표였어요. 이 작품을 통해 그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선 느낌입니다. 앞으로 마준규처럼 캐릭터가 강한 역할에도 과감하게 도전해 보고 싶어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