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4등 초등생 수영선수 통해 스포츠·교육·폭력의 문제 다뤄
심오한 주제를 유쾌하게 전달
한물간 수영 코치가 있다. 왕년에 한국 수영의 기대주였던 광수(박해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사고를 치던 자신을 주변에서 바로잡아주지 않아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여긴다. 수영을 즐기고 재능도 있는 초등학생 준호(유재상)가 있다. 대회에 나가면 늘 4등이다. 속이 타들어간 극성 엄마 정애(이항나)는 어렵사리 광수를 수소문해 준호의 코치로 맺어준다. 준호가 첫 대회에서 ‘거의 1등’을 차지해 온 가족이 기뻐하던 날, 동생 기호가 묻는다. “예전엔 안 맞아서 맨날 4등 했던 거야, 형?”
‘해피엔드’(1999), ‘은교’(2012)의 정지우(48) 감독 작품이라면 ‘섹슈얼리티’와 맞닿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똬리를 트는 데 13일 개봉하는 ‘4등’은 거리가 한참 멀다. 수영이 소재라 ‘벗은 몸’이 많이 나오긴 하는데, 국가인권위원회의 12번째 인권 영화 프로젝트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엔 19금 인권 영화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농담을 주고받았다며 짓궂은 미소를 짓는 정 감독은, 제안을 받은 여러 주제 중 스포츠 인권을 선택해 교육의 문제, 폭력의 문제까지 확장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국내 영화 시장에서 보기 드물 게 잘 만들어진 가족 영화로 보일 뿐이라는 이야기에 정 감독은 반색했다. “인권 영화 보러 왔으니 자세를 바르게 하라는 식으로 관객을 벌 세우지 않기 위해 고민이 많았죠. 진지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하면 더 많은 고민 기회를 주는 거잖아요. 실제 만들어진 수준을 보면 고예산 독립영화예요. 고맙게도 배우와 스태프들이 노무 투자 형식으로 참여해 제작비를 낮출 수 있죠. 수익이 나는 만큼 나눠 갖는 방식이라 결과가 좋았으면 합니다.”
체벌 장면이 곧잘 등장하는 데 그중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대목이 있다. 폭력이 준호와 기호 사이에도 전이되는 것이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될까 싶었는데 정 감독은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라며 눈을 부릅떴다. “이 세상에 결코 맞을 짓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때리면 안 되지, 그런데 맞을 짓을 했잖아’라는 식으로 생각하곤 해요. 처음엔 정당해 보여도 몸이 기억하는 폭력이 다음 단계, 그다음 단계로 옮겨가다 보면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행사되기 마련이에요. 어느샌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몸에 있게 되죠.”
정 감독은 더 직접적이고 정치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다고 했다. 큰 마음먹고 시작했다가 중간에 상업영화 물타기를 두세 번 거치며 죽도 밥도 아닌 작품은 만들기 싫었는데 인권위 프로젝트는 애매하게 봉합해야 할 일이 없어 흔쾌히,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기존의 상업영화 제작 틀에서 만들려고 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일단 4등이라는 제목부터 절대 허락되지 않겠죠? 아이가 혼자 대회에 나가는 엔딩도 없었을 거예요. 상업영화라면 용서할 수 없는 결론이에요. 엄마가 몰래 한편에서 지켜본다거나 뒤늦게 코치가 뛰어 오겠죠. 조금 더 심하게는 병에 걸린 코치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아이의 모습을 병실에서 TV 중계로 지켜보며 숨을 거두는 식으로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어요.”
글 사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