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를 만든 정재은 감독은 “도시는 사람을 중심으로 구획된 곳이지만, 그 안의 다양한 객체와 주체에게도 시선을 옮겨 바라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간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펼친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고양이’와 ‘아파트’는 핵심 키워드다. 2001년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로 데뷔한 그는 ‘말하는 건축가’, ‘말하는 건축 시티:홀’, ‘아파트 생태계’ 등 건축 3부작 다큐멘터리로 도시 주거 공간의 역사와 그 안의 삶을 아카이빙해 주목받았다. 정 감독은 “아파트 자체보다 도시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 공간인 아파트를 빼놓고 도시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20년 전과 달리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고, 지금은 고양이가 어디서나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번 작품은 오랫동안 주민의 돌봄을 받으며 드넓은 아파트 터에 편안히 자리잡은 고양이를 꼼꼼하게 포착한다. 아파트 곳곳에 흩어져 지내는 고양이는 최소 250마리. 원하는 때 원하는 장소에서 고양이를 볼 수 없으니 무조건 찍었는데, 편집 전 푸티지 영상만 350시간에 달했다고 한다.
영화는 단순히 “고양이를 아끼고 사랑하자”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온정만으로 동물과 인간은 공생할 수 없으며, 결국 인간의 의지와 결정에 이들이 큰 영향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정 감독은 “재건축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때 동물과의 관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돌아보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특정 상황을 찍었지만, 그 아파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재건축, 재개발이 일상적인 도시 안에서 동물의 생존과 삶의 방식이 어떻게 바뀌는지는 보편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모든 것이 폭파돼 폐허가 된 그곳에서 끝까지 떠나지 않던 고양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킨 고양이들은 안전히 살아남을까. 관객은 마지막 장면까지 계속 이어지는 질문을 곱씹게 된다. 88분. 전체관람가.
김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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