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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로 16년만에 돌아온 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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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50년전 영화 300여편에서 주연을 도맡았던 여배우가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음달 12일(현지시간) 개막되는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이하 칸)의 레드 카펫을 밟게 됐다. 이 쯤 되면 그냥 ‘전설’이 아닌. 현재 진행형인 ‘전설’이다. 윤정희(66)의 영화 인생은 본인의 말처럼 마침표가 없어 보인다. “레드 카펫에서 뭘 입을지는 비밀이죠. 지금 밝히면 재미가 없잖아요”라며 환하게 미소짓는 얼굴에는 그 또래의 여성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설레임마저 배어난다. 16년만의 스크린 복귀작인 ‘시’(이창동 감독)로 칸 공식 경쟁 부문에 합류한 한국 여배우의 ‘전설’을 지난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윤정희


-윤 선생님을 만난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시며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혹시 제 어머니를 아십니까?농담입니다. 하하하.

오래된 친구마냥 저를 여기신다는 뜻이겠죠. 저한테도 예전 영화팬들은 모두 친구나 다름없어요. 얼마전 레스토랑에 갔다가 나이 지긋한 팬들을 만났는데. 동창을 만난 것처럼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정말 흐뭇했답니다. 조직화된 팬클럽만 없었다 뿐이지. 예전에도 영화팬들의 사랑은 엄청났어요. 촬영장마다 도시락과 과일을 싸 오시기도 했고요. 제주도에 촬영을 가면 몇몇 분들은 굴을 따서 주시기도 했어요.

-칸 진출을 우선 축하드립니다. 프랑스에서 오래 살고 계시지만. 영화제 참석을 위해 칸에 가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죠?

남편(피아니스트 백건우)이 칸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 가본 적은 있어요. 남편이 칸 개·폐막식이 열리는 극장에서 연습하는 동안 내부를 둘러보면서 느낀 점이 있었어요. 소박하다 못해 낡은 극장 내부를 화려하게 꾸미는 것은 영화인들의 아름다움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솔직히 이 나이에 레드 카펫에 선다고 얼마나 흥분하겠어요(웃음). 좋은 감독을 만나 좋은 작품에 출연했다는 것이 기쁠 따름이죠.

-이창동 감독과는 평소 친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감독이 윤 선생님의 실제 모습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하던데요.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몇 차례 본 게 전부였어요. 물론 연출작들을 모두 보고. 훌륭한 감독이란 것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요. 2년전쯤이었나요. 이 감독 부부와 저희 부부가 밥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이 감독이 저를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밝히더군요. 여태껏 기다린 보람이 있는가 싶어 너무 감동받았죠. 그 동안 영화로 복귀하고 싶어 몇몇 드라마와 연극 출연 제의를 거절했었거든요.

-오랫만에 돌아온 촬영장이 낯설었을 법도 했을텐데요. 게다가 이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배우를 괴롭히기로 유명한데요.

한 번도 영화를 떠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힘들지는 않았어요. 물론 예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은 있었죠. 한 커트의 촬영을 끝내고 모두 둘러앉아 모니터를 보는 게 이색적이더군요. 내 연기를 확인할 수 있어 아주 좋았어요. 저는 원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테이크에서 만족할 만한 연기를 뽑아내는 편인데. 이 감독을 비롯한 여러 스태프가 도와줘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설경구 전도연 문소리 송강호 등 이 감독과 작업했던 후배들이 이 모습을 보고 “이 감독님이 저런 분이셨냐”며 놀라기는 했습니다.(웃음)

-윤 선생님의 복귀를 남편도 반기셨는지 궁금합니다.

남편과 바이올리니스트인 딸은 저보다 더한 영화광입니다. 둘 다 매일밤 한 두편의 영화는 꼭 보고 나서야 잘 정도죠. 시사회가 열리는 오는 27일까지 기다리기 힘들다며 한숨만 내쉬고 있어요(웃음). 이 영화를 찍으면서 생전 처음으로 남편을 앞에 두고 연기를 연습하기도 했네요. 주인공의 소녀적인 감성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는데. 얼마나 어려웠는지 현장에서 서른 일곱번이나 NG를 냈어요. 남편과 함께 한 연습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프랑스에서의 평소 생활이 궁금합니다. 두 분이라면 왠지 바게트에 에스프레소만 드시고 살 것같습니다.

그럴 것같죠? 절대 아니랍니다. 100% 한국식으로 살고 있어요. 저희 가족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육개장 미역국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합니다. 요리 실력이 뛰어난 남편이 가끔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를 만들긴 하지만. 대부분의 식사는 한식으로. 그것도 제 손으로 차려요. “김치찌개만큼은 엄마가 세계에서 최고”라고 딸이 종종 말하는데. 제가 먹어봐도 그런 것같아요(웃음).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아파트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어서인지. 이웃 주민 모두가 저희 가족의 한국식 생활을 인정해줘요. 고맙죠.


-앞으로의 활동을 더 기대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계획이 있다면요.

제2의 데뷔를 한 느낌입니다. 이번 영화로 새롭게 태어났다고나 할까요. 어려운 현실을 잊기 위해 시 습작에 빠져드는 주인공 ‘미자’는 소녀적인 감성과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저와 닮은 구석이 많아요. 이번 영화에 더 많은 애착이 가는 이유죠. 남편과 저는 뭘 가지고 싶다는 세속적인 욕망이 없어요. 자동차는 필요없어 사지 않았고. 휴대전화는 한 대로 충분해 남편과 제가 돌려쓰고 있죠. 지금처럼 건강하게 좋은 연주를 들려주고. 좋은 영화에 출연할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어요.

조성준기자 whe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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