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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만 높으면 OK?…드라마 곪은상처 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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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대본.막장스토리에 배우들 불만 수면 위로

전국 시청률 25.9%, 수도권 시청률 27.1%.

현재 지상파 TV에서 이 정도 시청률이면 보기좋게 성공한 드라마다. 실제로 제작진은 지난 25일 종방연에서 드라마의 성공적인 마무리에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절대 해피엔딩이 아닌 듯하다. 지난 27일 자체 최고 시청률로 막을 내린 MBC TV ‘욕망의 불꽃’이 주연배우 조민기와 작가 정하연의 공개적인 대립으로 구설에 올랐다. 종영 후 오히려 망신살이 뻗친 셈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욕망의 불꽃’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데서 심각성을 더한다.

막장 스토리와 쪽대본에 멍들어가던 한국 드라마계의 곪은 상처가 터지고 있다. 한동안은 시청률이 높으면 모든 것이 용서받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나오고 있다.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에 대한 불만이 임계치를 넘어선 양상이다.

◇”녹화 당일 배우들에게 던져주며 그 완벽함을 배우들이 제대로 못해준다고 끝까지 하더이다” = 조민기가 26-27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남긴 말 중 한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글에 ‘욕망의 불꽃’을 적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30일 이 발언에 ‘욕망의 불꽃’의 정하연 작가가 반발하면서 9개월간 호흡을 맞춘 작가와 주연배우가 공개적으로 난타전을 벌이는 상황이 전개됐다.

정하연 작가가 “녹화 당일 대본을 던져준 적도 없다. 일주일 전에 줬다”고 반박하고 있어 대본 지연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보인다.

그러나 조민기의 발언에 많은 탤런트들이 절대적인 공감과 지지를 보냈다. 쪽대본, 대본 지연 문제가 국내 드라마계의 고질적인 병폐임을 방증한 것이다.

한 주연급 배우는 31일 “조민기 씨의 발언에 정말 공감했다. 속이 시원했다”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쪽대본에 이제 지쳤다. 해도 너무한다”고 성토했다.

앞서 이순재는 ‘욕망의 불꽃’ 종방연에서 “’욕망의 불꽃’은 일주일 전에 대본이 나와서 여유가 있었지만 ‘마이 프린세스’는 ‘회치기 대본’이었다”며 “이번에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KBS ‘프레지던트’의 주인공 최수종도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대본이 너무 늦게 나와 대사 외우고 준비하는 데 정말 애를 먹었다. 대본을 받으면 이걸 언제 외우나 암담했지만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는 심정으로 ‘그래 한번 해 보자’고 덤볐다”며 “대본이 너무 안 나오니 장일준이 결국 대통령이 못 되는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SBS ‘싸인’은 결국 쪽대본 릴레이 끝에 마지막회에서 화면조정용 컬러바가 뜨는 최악의 방송사고를 냈고, SBS ‘아테나 : 전쟁의 여신’도 쪽대본 탓에 주인공 정우성이 부상으로 겨우 하루를 쉬었음에도 촬영 분량이 모자라 1회 결방되기도 했다.

◇”이상한 나라에서 탈출했어. 반성도 없고 위선만 있는 악령들로부터 탈출” = 조민기의 트위터 발언 중 또다른 대목이다. 이 발언은 ‘욕망의 불꽃’ 마지막 촬영 직후 올린 글이다.

방송가에서는 인기 탤런트인 조민기가 트위터에 작심하고 이런 글을 올렸을 때는 단순히 쪽대본만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점점 더 선정적,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한국 드라마의 스토리에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막장 드라마’라는 비판은 시청자와 언론을 통해 제기됐을 뿐 드라마계 내부에서는 공개적인 자성의 목소리가 없었다.

’아내의 유혹’ ‘수상한 삼형제’ ‘조강지처클럽’ ‘웃어라 동해야’ ‘욕망의 불꽃’ 등은 방송 내내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에 직면했지만 높은 시청률이 면죄부 아닌 면죄부가 됐고, 출연진과 제작진도 시청자의 비판에 대해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지독하다’는 논리 등을 내세우며 항변했다.

하지만 배우라고, 제작진이라고 언제까지 ‘눈가리고 아웅’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 높은 시청률 뒤에 가려진 목소리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는 것. 최근 들어 잇달아 시청률 40%를 넘어서고 있는 KBS ‘웃어라 동해야’도 예외가 아니다.

이 드라마의 한 주연급 배우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시청률이 높아서 좋기는 하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감정 표현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현재 MBC ‘로열패밀리’로 인기를 얻고 있는 중견 배우 김영애는 “막장 드라마가 넘친다. 내가 배우지만 TV를 틀면 도저히 봐줄 수 없는 드라마가 요즘 너무 많아졌다”며 “그래서 한동안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고, 최근에도 같은 이유로 많은 작품의 섭외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러 비판에도 방송사 입장에서는 시청률이 높은 막장 드라마가 ‘효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시청률이 저조해 지난달 조기종영된 MBC ‘폭풍의 연인’의 나연숙 작가는 “’폭풍의 연인’은 막장드라마로 병든 사회를 치유하자는 의미를 갖고 쓴 드라마다. 불륜이 있는 막장드라마는 아무 문제없이 방송되면서 초반 시청률이 낮다고 해서 막 자르겠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는 말로 막장 드라마가 범람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앞서 드라마계의 대모 김수현 작가도 막장 드라마에 대해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그런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다 그렇게 사악한가 싶다. 인간을 너무 망가뜨리고 있다. 모두들 품격있게 일했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승자독식 가치 잘못..시스템 재정비해야” = 쪽대본, 막장 드라마의 양산은 ‘승자독식’의 가치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오로지 시청률로 방송사 편성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더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잘못된 제작환경이 정착됐다는 것.

KBS 드라마국 전문위원 이응진 국장은 “’위너 테익스 잇 올(winner takes it all)’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며 “지금까지는 이를 앞에 두고 전력 질주했고 그 덕에 한류 드라마가 아시아를 제패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잠시 멈춰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1970-1980년대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를 돌아보면 경제적 성취가 컸지만 그 후유증도 컸다. 지금 우리 드라마계가 그렇다”며 “한국 드라마가 그간 괄목 성장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과 후유증이 이제 나오는 것이다.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보강해 후유증을 치유하고 더 나은 제작 환경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하지만 ‘양화도 악화를 구축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같은 신념을 갖고 모두가 작업하면 쪽대본, 막장 드라마가 양산되는 현재 상황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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