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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마티유 아말릭의 ‘온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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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사람들

TV 프로듀서로 일하다 쫓겨난 남자 조아킴. 그는 미국 체류 도중 만난 쇼걸들을 이끌고 프랑스로 돌아온다. 애초 계획은 거창했다. 해안 지역을 돌며 공연을 펼치다 그 여세를 몰아 파리에서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조아킴은 무대를 마련하려고 혼자 파리로 향한다. 업계의 불신만 확인한 채, 그는 이혼한 아내가 떠넘긴 두 아들을 대동하고 공연에 합류한다. 조아킴은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 혼란스럽다. 단원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고, 계속 말썽을 피우는 아들이 신경 쓰인다. 결국 아들을 되돌려 보내고 오던 길에 조아킴은 방향을 잃어버린다.


‘온 투어’(5일 개봉)는 다섯 쇼걸을 데리고 공연을 떠난 남자의 이야기다. 만약 풍만한 육체를 지닌 쇼걸들의 화끈한 무대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게 분명하다. ‘온 투어’는 화려한 쇼의 재연에는 관심이 없는 작품이며, 뉴 벌레스크(익살·야유·희롱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burlesco’에서 유래한 말로 여성의 매력을 강조한 풍자의 춤)를 표방한 쇼도 그렇고 그런 춤과 노래의 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우이자 감독인 마티유 아말릭은 하급 예술에 대해 어떤 풍자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온 투어’는 무대 뒷모습을 기록하는 데 별로 충실하지 않으며 쇼 비즈니스의 이면을 냉정하게 파헤치지도 않는다.

현재 모습만 보면 조아킴은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 조아킴은 TV쇼 제작에 실패해 도망친 전력 탓에 업계에서 밀려난 인물이다. 심지어 아이들도 아버지를 업신여기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처진 가슴과 늘어난 뱃살을 흔들며 춤추고 노래하는 쇼걸들의 인생도 그리 밝아 보이진 않는다. 유별난 패션과 거침없는 행동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곱지 않으며, 어떤 사람은 험악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은 닮으라고 권할 만한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온 투어’의 태도는 다르다.

사람들은 보통 최종 목적지에 삶의 가치를 둔다. 그리고 개별 목표를 성취하고자 현실을 희생한다. ‘온 투어’는 ‘바로 이 순간’에 가치를 둔다. 조아킴과 쇼걸들은 삶이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무대를 가꾸는 건 자신이라고 믿는 그들은 매 순간을 열정적으로 대한다. 그들은 길 끝의 목적지보다 길 자체를 필요로 한다. 쇼걸을 대표해 미미가 조아킴에게 “인생의 산책로를 만들어 줘 고맙다.”고 말하는 건 그런 까닭에서다. 당연히 그들은 파리에 도착하지 못한다. 파리 무대에 설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둘러보아야 할 더 많은 세상이 앞에 놓여 있어서다.

아말릭은 현명한 감독이다. 메가폰을 잡은 배우들이 대단한 작품을 완성하려고 안달하는 것과 달리 그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에 욕심 없이 접근했다. 실제 쇼걸을 카메라 앞에 세우고 그들과 보낸 여정을 영화의 소재로 삼았다. 로드무비에 목적지가 있으면 안 된다는 그의 판단은 옳았다. 영화의 결말, 길의 끝, 삶의 목표에 집착하면 정작 중요한 진실을 놓치리란 걸 그는 알았다. 조아킴이 무대 안팎의 혼란을 감싸 안음으로써 단원의 신뢰를 얻듯이 아말릭은 어수선한 에피소드를 정렬하고 폭발시킨 끝에서 자기 목소리를 터뜨린다. 미래에 치우쳐 현재의 풍요로움을 만끽하지 못하고 먼 목표에 얽매여 삶의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 ‘온 투어’는 필견의 작품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1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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