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멸 감독 ‘지슬’… 美 선댄스영화제 한국 첫 최고상 심사위원대상
‘지슬’은 26일(현지시간)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제29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시네마 극영화(드라마틱)’ 부문의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선댄스영화제는 초청작을 미국 영화와 외국 영화(월드시네마)로 나누고 다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부문으로 나눠 4개 부문에 상을 준다. 한국 영화가 선댄스에서 상을 받은 것은 2004년 김동원 감독의 ‘송환’이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부문의 특별상에 해당하는 ‘표현의 자유상’을 수상한 것이 유일하다. 본상을 받은 것은 오 감독이 처음이다. 선댄스영화제 측은 홈페이지에 “전쟁의 불합리성을 그린 영화는 많지만 이렇게 절묘한 디테일로 그린 작품은 드물다. 강렬한 흑백의 영상은 인물들의 인간성뿐 아니라 이 지역의 결까지 담아낸다”고 평했다.
영화제 시상식에 하루 앞서 귀국한 오 감독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제주 사람들의 가슴에 맺힌 이야기인데 그동안 한국사에선 이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했다. 냉전 이후 큰 파동 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이 영화가 특히 사건의 원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미국에서 상영되고 인정받아 더 의미가 있다. 소통의 통로가 열렸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영화제) 관객 중 한 미국인 중년 아주머니가 울어서 눈이 빨개진 채 ‘이 영화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며 현지 반응을 전했다. 제주 출신으로 줄곧 방언으로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찍어 온 오 감독은 “개인적인 영광보다는 제주 섬사람들의 통증을 이야기한 영화이다 보니 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영화를 찍는 동안 함께해 주신 수많은 영혼과도 같이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오 감독이 만들었던 ‘뽕똘’ ‘어이그 저 귓것’ 등의 제작비는 500만~80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슬’은 순제작비만 2억 5000만원에 이른다. 충무로의 극영화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오 감독에게는 블록버스터 영화인 셈. 오 감독은 “역사적인 사건을 재조명한 작품인 만큼 작품의 질을 최대한 높여야 했다. 덕분에 빚도 많이 얻었다”며 웃었다.
선댄스영화제는 영화배우 겸 감독 로버트 레드퍼드의 후원으로 시작된 독립영화 축제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레드퍼드가 맡은 배역 ‘선댄스 키드’에서 이름을 따왔다. 스티븐 소더버그와 쿠엔틴 타란티노, 코언 형제 등이 선댄스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