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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의 답습일까… 아쉬움만 남긴 ‘로포리’

포르노는 교접하는 인간의 기계성을 극대화한다. 언제·어디에서·누구와·무엇을·어떻게 하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것을 왜 하는지 전후 맥락은 나타나 있지 않다. 만든 목적이 분명해서다.
교합 장면을 부각해, 보는 사람의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포르노의 존재 이유다. 거기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다. 매뉴얼대로 작동하는 쾌락 기계다. 외설과 예술을 구별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성교만 하느냐, 성교도 하느냐’를 따져 보는 것이다. 아무리 다양한 테크닉을 선보인다 한들, 성교만 하는 것은 외설이다. 반면 예술은 다층적 의미화를 통해, 어째서 성교가 이 작품에 필수적 요소인지를 납득시킨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물론 외설과 예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작품도 부지기수다. 예컨대 1970~80년대 일본의 영화 제작사 닛카쓰가 주도한 ‘로망 포르노’ 장르가 그렇다. 닛카쓰는 경영난에서 벗어나고자 포르노 영화를 찍었다. 그렇지만 메이저 회사다운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는데, 기본 규칙(1시간 영화를 기준으로 10분에 한 번씩 성애 장면이 나오고 10일 이내에 촬영할 것)만 지키면 감독의 재량권을 보장한 것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등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도 로망 포르노로 데뷔했다. 그렇게 재능 있는 제작진이 참여한 이 계열의 작품에는 ‘왜’라는 물음을 포함한 성행위의 내러티브가 담겨 있었다.

그랬던 로망 포르노를 현대적 버전으로 재탄생시켜 보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닛카쓰는 지난해 ‘로포리(로망 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다섯 명의 유명 감독에게 연출을 맡겼다. 그중 한 사람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 사랑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다. 그의 로포리는 에리크 사티의 곡 ‘짐노페디’를 모티프로 한,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다. 주인공은 영화감독 후루야(이타오 이쓰지)다. 그는 과거에는 명성을 떨쳤으나 지금은 모든 영광을 잃은 상태다. 이 영화는 그런 후루야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여러 여자를 만나며 겪는 일들을 그린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는 로포리라고 하기에 아쉬운 점이 많다. 리부트라고 하면, 대다수 (로망) 포르노의 근본적 한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적 시각을 전복하거나 탈구축하는 반성적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여전히 남성의 실현 불가능한 로망을 대리 충족시킨다. ‘내가 아는 여성들은 전부 나를 좋아해서, 나는 그들 모두와 관계 맺을 수 있다’는 이상한 욕망의 재현이다. 이런 장르적 관습은 답습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성녀와 창녀의 이분화된 여성상도 이제 지겹다. 숭배와 강간은 같은 남성 무의식의 다른 작용일 뿐이다.

AV(성인 비디오)가 감히 성취할 수 없는 에로스, 로포리는 이것을 지향했으면 좋겠다. 7월 6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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