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예감에서 시작된 폭력은 계속된다
쟁점은 이것이다. 어린 줄리앙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앙투안은 사회적 평판이 좋은 남자다. 이렇게 특별한 잘못이 입증되지 않은 아빠가 주기적으로 아들과 만나겠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의 권리를 어떻게 제한하겠느냐 하는 점이다. 결국 재판부는 앙투안의 손을 들어 준다. 아들은 따로 살되, 정해진 날은 반드시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초반에 앙투안은 ‘아빠’의 얼굴을 보여 준다. 그렇지만 점점 그는 ‘그 사람’의 면모를 내보인다. 앙투안의 흉흉한 기세에 눌려 줄리앙은 얼어붙는다. 물론 폭력에 노출된 사람의 움츠러듦이 부정성만 띠는 것은 아니다. 도미야마는 다음과 같이 쓴다. “폭력을 감지한 자들이 방어 태세를 취하는 그 수동성 자체에 의의가 있다는 것, 즉 ‘수동성에 잠재력이 항상 깃들어 있다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 줄리앙은 나름대로 저항했다. 판사에게 자기 입장을 전달한 것, 엄마를 지키려고 앙투안에게 거짓말을 한 것 등이 그렇다. 하지만 전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후자는 금방 들통났다. 방어 태세를 취하는 수동성을 아이가 적극적으로 전유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다.
“이제 끝났습니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결말에서 어떤 상황이 마무리되면서 언급되는 대사다. 영화 제목은 그와 정반대다. ‘폭력의 예감에서부터 시작되는 폭력’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상흔이 줄리앙에게 깊게 남았다. 소년은 목메어 운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진짜 끝낼 방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