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만에 정규 솔로 앨범 낸 김창완

그리움·가족·달라진 시간관 담은 11곡
통기타·목소리로 담담하게 위로 전해
“솔로 앨범은 공원에서 바라보는 황혼
동화 속 완벽한 행복 기다리지 말아야”
1977년 산울림으로 데뷔한 뒤 20년간 라디오 프로그램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진행하며 연기 활동까지 하고 있는 김창완이 지난 18일 정규 솔로 앨범 ‘문’을 발매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노래 부르는 시간부터 일하는 시간까지 늘 모든 시간을 즐기려 노력한다”며 활짝 웃었다.<br>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시간은 화살처럼 앞으로 달려가거나/차창 밖 풍경처럼 한결같이 뒤로만 가는 게 아니야/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멈춰 서 있기도 한단다/더 늦기 전에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모든 생명은 아름답다.”(‘시간’)

기타 소리에 실린 나지막한 음정이 노래와 독백을 넘나든다. 지난 18일 나온 가수 김창완의 정규 솔로 앨범 ‘문’(門)은 담백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마음에 와닿을 땐 묵직한 위로가 된다. 발매 이틀 전 서울 서초구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창완은 기타를 안고 연주와 대화를 오갔다.

산울림에 이어 김창완밴드로 활동 중인 그가 홀로 만든 음반으로 돌아왔다. 1983년 ‘기타가 있는 수필’ 이후 37년 만이다. 특별히 계획하지는 않았던 이번 앨범은 관객을 못 만나는 일종의 ‘분리 불안’에서 시작됐다. “공연이 취소되면서 공백이 생겼고 곡들을 더 모아 정규 솔로 앨범으로 엮었어요. 늘 제가 해 오던 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일상이 이렇게 조명받긴 또 처음이네요.”

‘시간의 문을 열다’란 부제가 붙은 이번 앨범에는 기존 발표곡에 신곡 6곡을 더해 모두 11곡을 실었다. 애착이 간다고 밝힌 연주곡 ‘엄마 사랑해요’를 시작으로 시간의 본질을 묻는 ‘시간’, 힘든 이들에게 따뜻한 엄마 품을 상기시키는 ‘자장가’와 ‘먼길’이 포함됐다. ‘이제야 보이네’, ‘보고 싶어’ 등에선 돌아가신 부친과 막냇동생(고 김창익)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에 대한 생각까지 가족을 향한 애틋함도 담았다. ‘글씨나무’, ‘옥수수 두 개에 이천원’은 특유의 동심과 일상 풍경을 놓치지 않고 전한다.
김창완 정규 솔로 앨범 ‘문’.<br>이파리엔터테이니움 제공
타이틀곡 ‘노인의 벤치’는 쓸쓸하면서도 두 백발의 세월이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한 곡이다. “나이 든 여자가 다가와 앉아도 되냐고 물었지/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어 (중략) 그렇게 우린 만났어 세월의 흔적처럼/노인의 벤치에 앉아서/ 날 보고 방긋 웃었지 나도 그녈 보고 웃었어/주름을 볼 용기가 없었으니까.” 돋보기로 비춘 가사와 기타 치는 모습, 노트 속 그림들이 등장하는 이 노래 뮤직비디오는 그가 휴대전화로 직접 찍었다.

이번 앨범은 ‘기타가 있는 수필’과 맞닿아 있다. 당시 수록곡 ‘꿈’에선 “예쁜 성에 왕자가 살고 공주가 살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이번엔 “유치한 동화책은 일찍 던져 버릴수록 좋다”(‘시간’)고 말한다. 완벽한 행복이 따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자는 제안이다. 기계 흔적 없이 최소한의 악기로 만든 어쿠스틱한 소리가 음악을 듣는 현재에 더 집중하게 한다.

“37년 사이 가장 달라진 걸 꼽자면 시간관이에요. 시간은 흘러간다고 배웠지만,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무언가 될 거라는 착각을 유발하는 사고방식이었죠. 시간에 대한 이러한 믿음을 벗어던졌어요. 동화 속 세상이나 환상적인 사랑이 어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대신 지금 누리는 행복을 봐야죠.”

기타와 목소리 등 최소한의 악기로 만든 앨범 ‘문’은 37년전 ‘기타가 있는 수필’과 맞닿아 있다. 이파리엔터테이니움 제공
자신의 생각과 변화가 오롯이 담긴 정규 솔로 앨범을 그는 ‘공원에서 보는 황혼’에 비유했다. 9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산울림을 ‘지난밤 달콤한 꿈’으로, 김창완밴드는 ‘밝아 오는 아침’이라고 한 것과 사뭇 느낌이 다르다. “꽃보다 낙엽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시인도 많아요. 그간 태양의 노고와 한여름의 비, 이런 것들이 다 담겨 있으니까요. 아침은 어둠이 지난 뒤 편안한 아름다움이라면, 어둠이 내리기 직전 두려움 앞에서 보는 고즈넉한 황혼은 애처로움이 섞인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죠. 간절해서 아름다운 것이 황혼의 그것이에요.”

황혼이라고 표현했으나 그의 곡들은 듣는 이의 나이를 가리지 않고 가닿을 법하다. “저는 그냥 노래할 뿐이에요. 저의 잡다한 생각들이 뭉클하는 덩어리로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죠.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지금까지 저를 노래하게 한 것이고요.” 그가 다시 기타를 잡았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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