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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구하러 가던 의대생 손자, 가슴에 10발 총탄 박혔다

할아버지 구하러 가던 의대생 손자, 가슴에 10발 총탄 박혔다

강주리 기자
강주리 기자
입력 2022-04-15 16:48
업데이트 2022-04-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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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장악 호스토멜에 혼자 있는 할아버지 구조하려다 참변

러군, 할머니·손자 탄 차량에 무자비한 총격
쓰러진 18살, 가슴에만 10발·이마도 총상

우크라 최고 의대 장학금 받고 합격한 수재
구하려던 외조부, 이웃 도움으로 탈출 성공
母 “부모는 장애자 됐고 난 아들 묻었다”
파괴된 잔해 더미 속에서 찾은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는 우크라 여성.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파괴된 잔해 더미 속에서 찾은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는 우크라 여성.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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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 학살 시신 옮기는 자원봉사자들
부차 학살 시신 옮기는 자원봉사자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에 위치한 부차 마을에서 자원봉사자들이 14일(현지시간) 냉동 컨테이너로 시신을 옮기고 있다. 지난 1일까지 러시아군이 한 달여 동안 점령했다가 철수한 부차 마을에서는 학살당한 것으로 보이는 민간인 시신 수백 구가 발견됐다. 키이우 AP 연합뉴스 2022.4.15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다음날인 2월 25일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살던 18살 손자가 할아버지를 구하러 가던 길에 러시아군의 무자비한 총격을 받고 온몸이 벌집이 된 채 숨졌다. 아픈 엄마를 간호하며 우크라이나 최고 의과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합격했던 올렉산드르 이반노프(18)는 가슴에만 10발의 총알을 맞고 숨졌다. 의로운 의사를 꿈꿨던 그의 미래는 러시아군의 포격 속에 산산조각이 났다. 

외조모 “손자 머리 한 쪽으로 
기우는 것 보고 정신 잃었다”

올렉산드르는 갑작스러운 전쟁 시작 속에 키이우 북쪽에 있는 호스토멜에 있는 외할아버지를 급히 키이우로 데리고 오기 위해 외할머니가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 러시아군은 침공 첫날부터 호스토멜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손에 넣었다. 올렉산드르의 가족은 러시아군이 장악한 이곳에 뇌졸중을 앓으며 혼자 있는 할아버지를 한시라도 빨리 구해야 했다.

키이우를 떠나 호스토멜로 가던 도중 올렉산드르가 탄 차에 러시아군의 총격이 쏟아졌다.

올렉산드르의 외할머니 릴리아는 “마치 차 안에서 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면서 “올렉산드르의 머리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본 뒤로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의식을 찾은 릴리아의 눈에 손자의 시신이 들어왔다.

가슴에 10발, 이마에도 총상이 있었다.

릴리아는 “러시아군은 우리 차를 향해 계속 총을 쐈다”며 슬퍼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페달을 밟았다고 했다.

릴리아도 파편에 맞아 다쳤지만 몇 ㎞를 더 달린 끝에 구급차를 불러 준 한 소년의 도움으로 부차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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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들어선 우크라 루한스크 공동묘지
새로 들어선 우크라 루한스크 공동묘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민간인 희생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1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 세베로도네츠크의 한 교회 인근에 새롭게 조성된 공동묘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스크주) 지역에서는 전열을 재정비한 러시아군이 집결 중인 것으로 전해져 긴장이 고조하고 있다. 2022.4.15 세베로도네츠크 로이터 연합뉴스
급박한 상황 속 차에 남겨진 시신
엄마, 아들 시신 찾아 부차에 묻어

상황이 급박해 손자의 시신은 차에 그냥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이 소식을 알게된 올렉산드르의 엄마 스베타는 러시아군이 점령한 곳에서 부모님을 먼저 데려와야 하는지, 도로에 버려진 차에 있는 아들의 시신을 수습해야 하는지 선택해야 했다.

결국 남편과 상의한 끝에 아들의 시신을 찾으러 호스토멜로 향했다.

스베타는 “러시아군이 호스토멜로 이어지는 다리를 폭파하려 한다고 들어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려면 바로 떠나야 했다”라고 말했다.

부부는 아들의 시신을 찾아 다음날 부차의 한 묘지에 묻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외할머니 릴리아는 병원에서 대피 차를 타고 키이우로 돌아왔다. 외할아버지도 이웃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아 9일 키이우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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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등 북부지역에서 물러난 러시아군이 전쟁 목표를 동부 돈바스 점령으로 수정한 가운데 북부 주요 도시에 배치했던 무기와 장비를 동쪽으로 실어 나르며 총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서방에 추가 무기 지원을 요청하며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양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외곽 도로에서 장갑차를 운전하고 있다. 마리우폴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등 북부지역에서 물러난 러시아군이 전쟁 목표를 동부 돈바스 점령으로 수정한 가운데 북부 주요 도시에 배치했던 무기와 장비를 동쪽으로 실어 나르며 총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서방에 추가 무기 지원을 요청하며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양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외곽 도로에서 장갑차를 운전하고 있다.
마리우폴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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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군 공격에 주인 잃은 신발들
러군 공격에 주인 잃은 신발들 러시아군 공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슈퍼마켓 입구 계단에 14일(현지시간) 주인 잃은 신발들이 놓여 있다.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은 지난달 초부터 러시아군과 친러 반군에 포위당한 채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대부분 지역이 점령당했다. 2022.4.15 마리우폴 로이터 연합뉴스
아픈 엄마 간호하며
키운 의사의 꿈 산산조각

올렉산드르가 세 살 때 엄마 스베타는 근위축증이 발병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병시중을 들면서 신경외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실제로 우수한 성적으로 우크라이나 최고 의과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합격한 집안의 희망이자 기쁨이었다.

스베타는 “전쟁은 우리 가족에게 다른 무엇보다 영향이 컸다”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장애를 가지게 됐고 난 내 아들을 묻었다”고 말했다.
포격 소리에 아들 먼저 몸으로 감싼 우크라 ‘모정’
포격 소리에 아들 먼저 몸으로 감싼 우크라 ‘모정’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23일(현지시간) 길 가던 여성이 포격 소리에 놀라 아들을 몸으로 감싼 채 땅에 엎드려 있다. 러시아군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포위한 채 투항을 요구하며 집중 공격을 퍼붓고 있다. 2022.3.24 마리우폴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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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주택가 공터에 박힌 러군 미사일
우크라 주택가 공터에 박힌 러군 미사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공세가 50일째 이어진 14일(현지시간) 벨라루스 국경 인근 체르니히우주(州) 센키우카 마을의 한 주택가 공터에 미사일이 박혀있다. 러시아군은 최근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등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철수한 뒤 동부 돈바스 지역과 동남부 도시 마리우폴에 공격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4.15 센키우카 AP 연합뉴스 20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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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린 아파트 앞의 찢긴 우크라 국기
뻥 뚫린 아파트 앞의 찢긴 우크라 국기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건물 중앙이 뻥 뚫린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아파트 건물 앞의 전깃줄에 14일(현지시간) 찢긴 우크라이나 국기가 매달려 있다. 한 달 넘게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을 받은 격전지인 마리우폴은 도시 기반시설의 90% 이상이 파괴되고, 이곳 주민들은 식량, 식수, 전기 공급이 차단된 채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2022.4.14 마리우폴 로이터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 연합뉴스
강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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