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5일 월요일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0년을 맞는 하루 전날. 고양시의 한 영화관에서 세월호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 상영회가 열렸다. 관객으로 가득 찬 영화관은 누군가의 깊은 탄식과 한숨 소리, 또 누군가의 훌쩍이는 소리 속에 깊게 침잠했다. 상영이 끝난 뒤 영화를 만든 김환태, 문종택 감독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객석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입니다. 긴 시간 우울에 잠식돼 있다가 올해부터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말 좋은 영화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 아직 좋은 어른들이 많다는 걸 느껴요. 감사합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문종택 감독은 짧은 침묵 뒤에 이렇게 답했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번 다시, 3년이든 5년이든 10년이든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기를 아버지로서 간절히 바랍니다.”

문종택 감독은 단원고 2학년 1반 17번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그럴듯한 호칭보다 그저 ‘지성 아빠’라고 불리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이제는 떠나고 없는 아이의 이름이지만 자꾸만 불러 보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평범한 자영업자였던 그가 아이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카메라를 들고 참사를 기록한 시간이 어느새 10년, 50테라바이트 분량의 영상이 남았다. 2014년 8월 8일 유가족들의 단식 현장을 촬영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아이를 잃은 가족을 향한 위로가 아니라 혐오의 말들이 오가는 세상을 향해 ‘저희 그런 사람들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 때문이었다.

2014년 세월호가 아이들을 삼켜 버린 후 그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왔다. 안산에서 팽목항으로 또 청와대와 국회로 가서 풍찬노숙을 하는 부모들 곁을 지키는 많은 다큐멘터리스트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바람의 세월’은 지나간 10년의 세월만큼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보다 성숙된 시각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문재인 정권으로 바뀌는 동안, 그 십 년 동안 정작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 다큐멘터리는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살아남은 이를 위로하는 어루만짐의 목소리들로 어우러진다. 1960년 4ㆍ19혁명에서 목숨을 잃은 아들의 어머니가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들의 어머니를 위로하고, 또 그 어머니는 2022년 10월 29일 핼러윈 파티를 하겠다며 웃으며 집을 나간 딸 잃은 어머니를 위로한다. 결국 시민들이, 우리들이 참사의 희생자를, 서로의 존재를 오래오래 기억하는 것, 그것이 이토록 불우한 시대를 살아가는 희망일 것이다.

그래서 ‘지성 아빠’ 문종택 감독이 딸에게 띄우는 편지가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다. “10주기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듯하지만 17일이 되면 또 시커먼 어둠이 찾아올 거야. 괜찮다. 밤하늘의 별들이 비춰 줄 그 길을 아빠, 엄마는 알고 있기 때문에 잘해 볼게. 열심을 다해 볼게.”

최여정 작가

최여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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