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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 이후 8년만의 속편 ‘평양성’ 연출

3타석 연속 홈런 내지 3루타를 날렸다. ‘황산벌’(2003년·277만명), ‘왕의 남자’(2005년·1230만명), ‘라디오스타’(2006년·187만명)는 흥행과 평단의 지지를 동시에 낚았다. 새옹지마일까. 다음은 3타석 연속 삼진. ‘즐거운 인생’(2007년·126만명), ‘님은 먼곳에’(2008년·171만명), ‘구르물 버서난 달처럼’(2010년·139만명)은 줄줄이 무너졌다. “또 실패하면 감독을 그만두겠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섰다. 이쯤 되면 믿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 퓨전 코믹사극이란 장르를 창조하면서 오늘의 그를 있게 한 ‘황산벌’의 속편 ‘평양성’(27일 개봉)을 8년 만에 꺼내 든 이준익(52) 감독을 지난 24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이준익 감독


→연기 욕심이 있는지 갈수록 (카메오) 등장시간이 길어진다.(‘평양성’에서 이 감독은 병사로 나와 대사와 표정연기까지 선보인다.)

-평생 영화를 하다 보면 영화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게 감독 심리다. 그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한다고 할까.

→‘황산벌’ 이후 8년이다. 왜 지금 ‘평양성’인가.

-8년 만에 속편을 찍는 게 이상한 일이긴 하다. 결정적인 계기는 ‘구르믈’ 때문이다. 야구로 치면 직구를 던진 영화다. 엔딩이 굉장히 절망적이다. 사극 전문 감독으로 영화를 너무 절망으로 끝낸 안타까움이 있었다. 희망적인 결말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황산벌’ 때 속편을 염두에 뒀나.

-당연하다. 다만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한 영화의 세계를 창조할 때 완결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660년 황산벌 전투로 백제가 멸망했고, 8년 뒤 고구려가(668년 평양성 전투), 또 7년 후에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가 당나라를 밀어낸다. 원래 세 편을 기획했다.

→7년 뒤에 ‘매소성’도 찍나.

-찍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상업영화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결국 ‘평양성’ 흥행이 문제인데.

-안 그래도 내가 폭탄 발언을 해서 지금 시달리는 것 아닌가.

→실패하면 감독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 말인가.

-망하면 상업영화에서 은퇴한다고 한 건데, 어차피 망하면 고향 앞으로다.(웃음) 살짝 얘기했는데 너무 세게 (보도가) 나왔다. ‘황산벌’부터 운 좋게 3연속 안타를 때렸다. 그 다음 삼진아웃당한 거다. 또 실패하면 투자자에게 피해를 미친다. 상업영화에서 성과를 못 내면 당연히 팽(烹) 당하는 게 맞다. 순제작비 57억 5000만원에 마케팅비 포함하면 80억원이 들어갔다. 260만~270만명은 들어야 본전이다.

→공들인 캐릭터들이 많아 이야기를 끌고나가기 쉽지 않았을 것같다.

-상업적으로 위험한 선택이지만 기대보다는 잘 나왔다. ‘글래디에이터’처럼 전쟁영화에는 영웅이 필수적인데 나는 그런 게 싫다. 한명을 미화시켜 관객들을 잠시 마비시키기는 건 싫다. 모두가 영웅인 동시에 개인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나.

-2011년 대한민국의 화두는 소통 아닌가. 민초를 대변하는 거시기(이문식)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극 중에서 고구려의 포로가 된 거시기가 김유신(정진영)을 신랄하게 비난하자 김유신이 “다 맞는 말 아니가.”라고 한다. 이 시대에 부족한 가치인 권력자의 너그러움이다. 또 문디(이광수)와 거시기가 티격태격하다가 마지막에 화해하는 장면은 어떤 전쟁이든 개인의 삶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가르치듯 하면 촌스럽다. 그러니까 웃음과 해학을 빌려온 거다. 데리다(자크 데리다·프랑스 철학자)가 말했나. 권력을 비판하면서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는 게 진짜 웃음이다. 예능 프로의 웃음과 권력을 조롱하는 걸 보면서 얻는 쾌감은 질량이 다르다.

→관객들이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길 원하나.

-물론 아니다. 시사를 하고 설문을 해보면 10대들의 호응이 가장 높다. 영화에는 난센스적인 요소가 많다. 벌떼로 30만 대군을 무력화하고, 돼지·황소·사람을 적진으로 날려 보내는 등 만화로 그려도 너무할 설정들이 요소요소에 있다. 역사나 전쟁을 엄숙주의나 비장미로 찍으면 (내가) 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미국 할리우드를 못 넘는다. 프랑스 역대 흥행 1위인 ‘아스테릭스&오벨릭스’를 생각하면 된다. 그건 더 황당하다. 결국 풍자나 해학을 소비하는 코드의 문제다. 새로운 코드에 대한 끊임 없는 도전이 중견감독의 몫이다. 상업적으로 불리해도 돌파해야 한다. (‘평양성’에는)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왕의 남자’보다 더 어려운 드라마투르기(드라마 구성)를 만들어 낸 데 만족한다.

→무리한 선택은 아닐까.

-상업영화 감독으로 자질 미달일 수도 있는데 감독은 어느 순간 부채도사처럼 의미와 재미의 외줄을 탈 수밖에 없다. 대박이 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왕의 남자’가 재미만 추구했으면 1000만명을 넘었을까. ‘평양성’도 마찬가지다. 실패하면 그만두겠다는 거다. 충동적으로 나온 게 아니라 굉장한 알리바이를 갖고 발언한 거다. ‘왕의 남자’보다 더 만족한 영화를 찍었는데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면 관둬야지….

→또 다른 ‘1000만 감독’이자 절친한 사이인 강우석 감독과 설 대목에 맞붙었는데.

-1980년대에 그는 조감독이었고 난 광고·마케팅 쪽이었다. ‘황산벌’ 시나리오를 들고 감독들을 찾아다녔는데 아무도 안 하려고 했다. 그때 강 감독이 투자할 테니 직접 해보라고 했다. 죽은 자식이 살아난 셈이다. ‘글러브’와 ‘평양성’이 비슷한 시기 개봉한 건 멋진 일이다. (1000만 감독이 맞붙어) 화제거리도 되고 좋지 않은가.

“카메라 마사지를 많이 받았다.”며 배우 뺨치도록 자연스럽게 포즈를 잡는 이 감독. 그는 자신의 영화 속 인물처럼 달변이었다. ‘소통’과 ‘중견감독의 책임’을 쉼 없이 강조했다. ‘평양성’의 사연 많은 캐릭터를 엮어 낸 솜씨는 여전했고, 해학이 담긴 웃음은 울림을 남긴다. 문제는 ‘황산벌’이후 8년 동안, 수많은 자극에 단련된 관객과의 소통이다. 두고 볼 일이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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