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이준익 감독](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1/27/SSI_20110127174558_V.jpg)
→연기 욕심이 있는지 갈수록 (카메오) 등장시간이 길어진다.(‘평양성’에서 이 감독은 병사로 나와 대사와 표정연기까지 선보인다.)
-평생 영화를 하다 보면 영화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게 감독 심리다. 그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한다고 할까.
→‘황산벌’ 이후 8년이다. 왜 지금 ‘평양성’인가.
-8년 만에 속편을 찍는 게 이상한 일이긴 하다. 결정적인 계기는 ‘구르믈’ 때문이다. 야구로 치면 직구를 던진 영화다. 엔딩이 굉장히 절망적이다. 사극 전문 감독으로 영화를 너무 절망으로 끝낸 안타까움이 있었다. 희망적인 결말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https://img.seoul.co.kr//img/upload/2011/01/28/SSI_20110128022603_V.jpg)
-당연하다. 다만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한 영화의 세계를 창조할 때 완결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660년 황산벌 전투로 백제가 멸망했고, 8년 뒤 고구려가(668년 평양성 전투), 또 7년 후에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가 당나라를 밀어낸다. 원래 세 편을 기획했다.
→7년 뒤에 ‘매소성’도 찍나.
-찍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상업영화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결국 ‘평양성’ 흥행이 문제인데.
-안 그래도 내가 폭탄 발언을 해서 지금 시달리는 것 아닌가.
→실패하면 감독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 말인가.
-망하면 상업영화에서 은퇴한다고 한 건데, 어차피 망하면 고향 앞으로다.(웃음) 살짝 얘기했는데 너무 세게 (보도가) 나왔다. ‘황산벌’부터 운 좋게 3연속 안타를 때렸다. 그 다음 삼진아웃당한 거다. 또 실패하면 투자자에게 피해를 미친다. 상업영화에서 성과를 못 내면 당연히 팽(烹) 당하는 게 맞다. 순제작비 57억 5000만원에 마케팅비 포함하면 80억원이 들어갔다. 260만~270만명은 들어야 본전이다.
→공들인 캐릭터들이 많아 이야기를 끌고나가기 쉽지 않았을 것같다.
-상업적으로 위험한 선택이지만 기대보다는 잘 나왔다. ‘글래디에이터’처럼 전쟁영화에는 영웅이 필수적인데 나는 그런 게 싫다. 한명을 미화시켜 관객들을 잠시 마비시키기는 건 싫다. 모두가 영웅인 동시에 개인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나.
-2011년 대한민국의 화두는 소통 아닌가. 민초를 대변하는 거시기(이문식)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극 중에서 고구려의 포로가 된 거시기가 김유신(정진영)을 신랄하게 비난하자 김유신이 “다 맞는 말 아니가.”라고 한다. 이 시대에 부족한 가치인 권력자의 너그러움이다. 또 문디(이광수)와 거시기가 티격태격하다가 마지막에 화해하는 장면은 어떤 전쟁이든 개인의 삶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가르치듯 하면 촌스럽다. 그러니까 웃음과 해학을 빌려온 거다. 데리다(자크 데리다·프랑스 철학자)가 말했나. 권력을 비판하면서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는 게 진짜 웃음이다. 예능 프로의 웃음과 권력을 조롱하는 걸 보면서 얻는 쾌감은 질량이 다르다.
→관객들이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길 원하나.
-물론 아니다. 시사를 하고 설문을 해보면 10대들의 호응이 가장 높다. 영화에는 난센스적인 요소가 많다. 벌떼로 30만 대군을 무력화하고, 돼지·황소·사람을 적진으로 날려 보내는 등 만화로 그려도 너무할 설정들이 요소요소에 있다. 역사나 전쟁을 엄숙주의나 비장미로 찍으면 (내가) 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미국 할리우드를 못 넘는다. 프랑스 역대 흥행 1위인 ‘아스테릭스&오벨릭스’를 생각하면 된다. 그건 더 황당하다. 결국 풍자나 해학을 소비하는 코드의 문제다. 새로운 코드에 대한 끊임 없는 도전이 중견감독의 몫이다. 상업적으로 불리해도 돌파해야 한다. (‘평양성’에는)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왕의 남자’보다 더 어려운 드라마투르기(드라마 구성)를 만들어 낸 데 만족한다.
→무리한 선택은 아닐까.
-상업영화 감독으로 자질 미달일 수도 있는데 감독은 어느 순간 부채도사처럼 의미와 재미의 외줄을 탈 수밖에 없다. 대박이 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왕의 남자’가 재미만 추구했으면 1000만명을 넘었을까. ‘평양성’도 마찬가지다. 실패하면 그만두겠다는 거다. 충동적으로 나온 게 아니라 굉장한 알리바이를 갖고 발언한 거다. ‘왕의 남자’보다 더 만족한 영화를 찍었는데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면 관둬야지….
→또 다른 ‘1000만 감독’이자 절친한 사이인 강우석 감독과 설 대목에 맞붙었는데.
-1980년대에 그는 조감독이었고 난 광고·마케팅 쪽이었다. ‘황산벌’ 시나리오를 들고 감독들을 찾아다녔는데 아무도 안 하려고 했다. 그때 강 감독이 투자할 테니 직접 해보라고 했다. 죽은 자식이 살아난 셈이다. ‘글러브’와 ‘평양성’이 비슷한 시기 개봉한 건 멋진 일이다. (1000만 감독이 맞붙어) 화제거리도 되고 좋지 않은가.
“카메라 마사지를 많이 받았다.”며 배우 뺨치도록 자연스럽게 포즈를 잡는 이 감독. 그는 자신의 영화 속 인물처럼 달변이었다. ‘소통’과 ‘중견감독의 책임’을 쉼 없이 강조했다. ‘평양성’의 사연 많은 캐릭터를 엮어 낸 솜씨는 여전했고, 해학이 담긴 웃음은 울림을 남긴다. 문제는 ‘황산벌’이후 8년 동안, 수많은 자극에 단련된 관객과의 소통이다. 두고 볼 일이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