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영화제인 미국 아카데미영화제는 26일(현지시간) 제84회 작품상을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아티스트’에게 안겼다.
온갖 화려한 색상과 기술이 판을 치는 현대 영화계에서 흑백화면에 소리도 없는 영화가 오스카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받은 것이다.
더구나 경쟁작이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3D 대작 ‘휴고’였다. 물론 ‘휴고’는 예술성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지만 할리우드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응집한 작품으로 대표된다.
그런 작품을 소리없는 무채색의 ‘아티스트’가 물리쳤다.
아카데미 영화제는 유성영화가 등장한 2년 뒤인 1929년 제1회 시상식을 개최했다.
자연히 영화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만 ‘유성영화’의 역사와 함께한 것이다.
이 때문에 무성영화가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초기 시상식 때는 무성영화를 수상에서 배제해 찰리 채플린 등 무성 영화인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아티스트’는 그런 무성 영화인들의 상실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다루고 있다.
무성영화가 유행하던 1920년대 조지(장 뒤자르댕)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대박을 터뜨리며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지만 1927년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영화는 사라져가는 별이 돼버린 조지와 유성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예 페피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다.
소리도 대사도 없지만 영화는 완성도와 예술적인 면에서 지금 관객의 눈높이에 손색없는 모습을 뽐낸다.
그런데 올해 아카데미의 선택이 방점을 찍는 것은 작품상 때문만이 아니다.
’아티스트’는 감독과 남우주연상(장 뒤자르댕)도 차지했는데, 이들은 모두 프랑스인이다.
둘의 경쟁 상대 역시 가장 미국적인 감독인 마틴 스코세이지와 가장 미국적인 배우인 조지 클루니(디센던트)·브래드 피트(머니볼)였다.
특히 일각에서는 남자 주연상을 놓고는 미국 배우 대 프랑스 배우의 자존심을 건 대결로 몰아가는 분위기였다. 장 뒤자르댕이 칸 영화제에 이어 골든글로브에서도 상을 받았지만 아카데미에서만큼은 미국 배우들의 경합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날 감독상과 남우 주연상의 수상소감은 어설픈 발음의 영어에 이어 자신감 넘치는 불어로 마무리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할리우드&하이랜드 센터(구 코닥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은 “지금 프랑스는 오전 6시인데 우리 애들한테 이제 (그만 TV 시상식 중계 끄고) 빨리 자라고 말하고 싶다”며 감격해 했다.
또 장 뒤자르댕은 “아이 러브 유어 컨트리(I LOVE YOUR COUNTRY!:당신들의 나라를 사랑합니다)”라며 자신에게 상을 안겨준 미국인들에게 감사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영화상이 드라마 부문과 뮤지컬·코미디 부문으로 나뉘는 까닭에 조지 클루니와 나란히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그는 아카데미에서 클루니를 제치고 홀로 상을 차지하자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카데미의 선택까지 받으면서 지난해 칸 영화제를 시작으로 이어진 ‘아티스트’의 수상 행진은 미국 방송영화비평가협회(BFCA)가 주관하는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4관왕, 영국아카데미 7관왕 등을 거쳐 정점을 찍게 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