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엔 온가족이 함께 보는 가족 영화가 흥행하기 쉽다. 그런데 ‘샌드위치 연휴’인 2일 오후 극장으로 향하던 가족 단위의 발걸음이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으로 모여들었다. 여기에 친구·연인들도 빠지지 않았다. 4세 꼬마부터 머리가 희끗한 60대 노모까지 연령도, 성별도, 지역도 다양했다. 전 연령층을 아우를 수 있는 가수, 세계를 접수하고 위풍당당하게 잠실벌에 선 ‘국제 가수’ 싸이의 콘서트 현장이다.
빌보드 차트 1위를 눈앞에 두고있는 싸이가 오랜만에 국내 팬들을 위한 콘서트를 준비했다. 이름도 비슷한 싸이월드와 함께 손잡고 막바지 한가위 공연 선물 ‘싸이월드 싸이 콘서트 - 싸이랑 놀자’를 마련했다. 날씨도 좋고 분위기도 좋았던 까닭에 콘서트 시작 전부터 잠실은 싸이의 노래로 들썩거렸고 현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월드 스타’를 본다는 설렘으로 들떠있었다.
약속한 7시가 조금 지나자 무대 옆 대형 스크린에 굉장히 불친절한 협박 문구가 나타났다. ‘지금부터 우리는 모두 일어납니다’, ‘모두 일어납니다’, ‘모두 일어나면 큰일이 일어납니다’, ‘지금부터 심장이 뜁니다’, ‘그리고 우리는 터진다’, ‘온도 100도’ 라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 그러자 약 2만 여명의 관객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1층만 스탠딩석이던 공연장은 3층 관객들까지 빠짐없이 일어나 전석이 스탠딩석처럼 됐다. 곧바로 싸이가 무대 아래에서 위풍당당하게 등장해 현장의 열기는 시작부터 최고조에 달했다.
’라잇 나우’와 ‘연예인’을 이어 부른 뒤 싸이는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올해 데뷔 12년 째를 맞이한, 또 데뷔 12년 만에 전성기를 맞은, 그리고 데뷔 12년 만에 남의 나라에서 신인가수가 된 싸이입니다. 반갑습니다!”라고 허리 숙여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는 “지난 한 달 동안 관객들의 합창 없이 외롭게 공연을 했다”며 “여러분이 이렇게 잘 놀면 고마운 나머지 제가 공연을 길게 할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놓았다.
친절한 그의 협박에 객석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때가 공연이 시작한지 10분 쯤 지난 뒤였다. 그럼에도 스탠딩석에 있던 ‘싸이의 젊은이들’을 비롯해 ‘싸이의 1층’, ‘싸이의 2층’, ‘싸이의 형제들’, ‘싸이의 자매들’은 뜨겁게 달궈진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다. 무대 위 ‘딴따라’ 싸이 역시 땀 범벅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싸이와 그의 팬들의 준비운동이었다.
싸이는 두 달 만에 마련된 국내 팬들과 만나는 자리가 무척 감격스러워 보였다. 노래를 부르며 팬들을 감동의 눈빛으로 바라봤고 벅차오르는 기쁨을 “와 대박” 등의 탄성으로 내질렀다.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환호해주는 팬들을 보며 감격에 감격을 더한 환희의 표정을 지었다.
싸이는 “저는 열흘 뒤에 다시 (미국에서) 신인가수로 돌아간다. 그러니 오늘이 즐길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며 더욱 방방 뛰었고 ‘끝’, ‘새’, ‘오늘 밤새’, ‘나 이런 사람이야’ 등을 열창하며 체육관 뚜껑이 날라갈 듯한 팬들의 함성을 이끌어냈다.
이날 현장에는 친구·연인들은 물론 가족단위가 많이 참석한 까닭에 어린 아이부터 노부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자리했다. ‘아버지’가 나올 때 머리카락이 새하얗던 한 중년 남성은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쳤고 그의 어깨를 아들이 토닥거렸다. ‘챔피언’이 나오자 의자에 잠시 앉아 쉬던 꼬마는 벌떡 일어나 열광적으로 야광봉을 흔들었다. 싸이가 격해진 기쁨을 억누르지 못해 다소 격한 감사의 인사를 하겠다며 “미성년자는 잠시 귀를 좀 막아달라”고 하자 신이 난 어머니가 초등학생 딸들의 귀를 막는 적극성을 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약속한 공연 2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관객들이 목놓아 기다리던 ‘강남스타일’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공연장 안 관객들은 나이와 성별, 국적과 직업 및 직위를 막론하고 말춤 자세를 취했다. 싸이의 랩에 이어 ‘오빤 강남스타일’ 차례가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 나게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만큼은 부끄러움도 민망함도 거리낄 게 못됐다. ‘대장’ 싸이를 따라 2만 여명의 팬들은 정신줄을 놓아가며 말춤 삼매경에 빠졌다.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풍경이 믿기지 않는듯 싸이는 객석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식상 마지막곡인 ‘낙원’을 부르며 “여러분 집에 가서라도 나를 잊이 말아”라고 외쳤고 중앙 무대에서 무릎을 꿇고 전 객석을 쳐다보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런 그를 보며 팬들은 더 크게 환호했고 싸이는 연방 “감사합니다”라고 입모양을 확실히 했다. 이 같은 성원이 꿈 같은 듯 고개를 절레 흔들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무반주 상태에서 “난 너와 같이 노래하고, 난 너와 같이 소리 지르고, 난 너와 같이 같은 곳에서 여기가 한국인 거야~”라고 부른 뒤 “감사합니다”라고 외치고 퇴장했다.
그러자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앙코르”를 외쳤다. 앞서 집에 늦게 보내겠다는 싸이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그의 이름을 더 크게 내질렀다. 바로 그때, 윤복희의 ‘여러분’ 음악이 흘러나왔고 중앙 객석 앞 지하에서 싸이가 솟아올랐다.
자신의 등장에 체육관이 떠나가라 소리지르는 팬들을 보며 그는 “많은 분들이 중요한 시기에 미국에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맞다. 중요한 시기니까 한국에 있는 거다. 많은 분들이 반겨주시고 성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저는 온라인을 믿지 않는다. 현장에서 함께 해주시는 관객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제겐 빌보드 차트 1위보다 감사한 존재가 관객”이라고 감동의 코멘트를 했다.
이어 그는 DJ 싸이로 변신해 1990년대 노래 메들리를 시작했다. 터보의 ‘나 어릴 적 꿈’을 시작으로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이정현의 ‘왜’ 등을 부르며 자신의 공연을 취재온 해외 매체들에게 다른 가수들의 곡도 소개했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복고와 동료의 노래를 홍보하는 센스가 버무려져 대형 무도회장이 마련됐다.
한바탕 디스코 춤을 춘 뒤 싸이는 “요즘은 어안이 벙벙한 매일이다. ‘강남스타일’에 이은 신곡과 뮤직비디오와 춤을 또 만들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있다. ‘기대를 많이 받으면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이 많이 나오는데 기대해 주시면 제가 한 번 감당해 보겠다”고 자신했다. 그리고는 정말 마지막 곡이라며 이상은의 ‘언젠가는’을 읊조렸다. 클라이맥스에선 관객들 앞을 꼼꼼히 뛰어다니며 ‘90도 폴더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저는 대한민국의 가수 싸이였습니다”라고 외치며 작별 인사를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팬들이 또다시 “앙코르”를 외쳤고 싸이는 행복하지만 기가 막히다는 듯이 무대 위에 섰다. “한국 가수가 진짜 잘논다는 걸 세계에 나가서 뭐든 보여주고 돌아오겠다”는 그는 “무료 관객들의 특징이 ‘이 정도만 봤으면 됐지’ 하면서 조기귀가를 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떠한 유료 관객들보다 귀가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 이런 식으로 안가고 버티면 저도 더하는 수밖에 없잖아요”라며 ‘무한 앙코르’ 의지를 내비쳤다.
또 “최근 링거를 맞았다. 이틀 쉬긴 했는데 오늘 오한이 드는 듯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그런데 저는 천상 딴따라인가 보다. 지금 컨디션이 정말 좋다. 지금부터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미칠 준비가 되셨습니까?”라며 5곡 메들리를 선언했다.
그의 앙코르 곡은 자신의 히트송이 아닌 ‘국민 가요’들이었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를 필두로 ‘내게 남은 사랑을 다 줄게’, ‘그대에게’, ‘여행을 떠나요’를 연이어 불렀다. 모두 ‘국민 가요’인 까닭에 전 객석의 팬들은 ‘미친듯이’ 뛰었고 혼신의 힘을 다해 따라 불렀다. 싸이도 팬들의 열광적인 에너지를 받아 무대를 휘저었고 물을 뿌리며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당겼다. 이때가 앙코르만 두 번째였고 공연이 시작된지 2시간 45분 째였다.
’여행을 끝나요’를 마치고 싸이는 관객들에게 조심히 돌아가라고 인사하고 커튼 뒤로 사라졌다. 공연장의 조명은 모두 켜졌고 ‘강남스타일’ 배경음악만 깔렸다. 발길을 돌리던 관객들은 “오빤 강남스타일!”이라며 따라불렀고 “나는 사나이” 떼창을 시작했다. 흥얼거리던 목소리들은 한데 모여 커졌고 본 공연 못지않은 호응이 만들어졌다.
그러자 마치 짠 듯이 싸이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팬들이 대견하고 고마우면서도 대단하고 미쳤다는 듯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싸이를 보며 발길을 돌리던 관객들은 다시 자리에 들어섰고 또 “앙코르”를 연호했다.
이미 여러차례 눈시울이 붉어졌던 싸이는 목이 메이는 듯 마이크를 잡고 머뭇거렸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린 그는 “여러분이 그 자리에 없었으면 저는 그냥 살찐 남자가수였다. 하지만 여러분이 있어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며 감사해했다.
그가 선택한 정말 마지막곡은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팬들과 함께 진심을 담아 열창하던 그는 곡이 끝날 무렵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대며 조용히 해줄 것을 부탁했다. 순간 공연장은 정적으로 가득찼고 싸이는 마이크 없이 “제 얘기 들려요?”라고 말한 뒤 “잊지말고 기억해줘요” 마지막 가사를 불렀다. 그 순간 시계는 10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본 공연 2시간에 앙코르만 1시간을 한 ‘국제 가수’, ‘천상 딴따라’ 싸이 덕분에 수만 명의 팬들은 보름달보다 환한 미소를 머금고 땀 범벅인 채 돌아섰다.
박소영 기자 comet568@med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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