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감독은 주인공의 모델인 김근태란 거인의 생애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110분의 상영시간 중 상당 부분을 고문 자체에 할애했다.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고문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부숴버렸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정공법을 택했다. 김 고문의 수기와 또 다른 피해자의 증언을 토대로 악명 높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문 수법을 복원했다. 김종태의 입에 고춧가루를 가득 풀은 물을 주전자째로 들이붓거나, 전기고문의 효과를 높이려고 몸 곳곳에 소금을 비벼댄다. 의식을 잃은 김종태가 하혈하는 장면에 이르면 관객은 몸서리를 치게 된다. 관객들도 고문을 당하는 것만큼 괴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면할 순 없다. 영화적 허구가 아닌 부끄러운 우리의 과거이기 때문이다. 정 감독은 “상처는 덮어두면 곪는다. 역사적 상처도 마찬가지다. 곪아 터지지 않고 썩은 채 굳어버려 치유할 수 없는 내상이 되기 전에, 상처를 들추고자 한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또한 “국가의 이름을 걸고 가했던 야만적인 폭력들을 20년이 지난 지금, 피해자들은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한다고 해서 과연 역사적 화해로 승화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자칫 끔찍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전적으로 박원상의 공이다. 시나리오 초고를 읽은 뒤 한 달 만에 10㎏을 뺀 박원상은 육체적 극한에 이르는 고문장면은 물론, 서서히 황폐해지는 주인공의 영혼까지 완벽하게 그려냈다. 물론 부산영화제 최대 화제작으로 떠오른 또 다른 이유는 제작 및 개봉시점 때문이다. ‘화해’ 혹은 ‘통합’의 정치 구호가 넘쳐나는 정치의 계절에 공개됐고, 대선을 한 달 앞둔 11월에 개봉한다. 정 감독은 “어떤 식으로든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사회와 대중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감독에겐 보람”이라고 말했다.
부산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