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래퍼’ 강춘혁(28) 씨는 1998년 부모님과 함께 탈북해 중국 등 제3국을 떠돌다 2001년 한국에 들어온 함경북도 온성 출신이다.
2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국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탈북자 예술인으로서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삐딱하게 쓴 야구 모자에 엉덩이에 걸친 배기 바지를 입은 그의 모습에서 10대를 북한에서 보낸 ‘낯선 이방인’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강 씨는 지난달 한 케이블 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북한 인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화끈한’ 랩을 쏟아내 화제가 됐다.
”내 어머니가 아오지에서 얻은 건 결핵, 땅굴 판 돈 착취해서 만든 것은 핵… 나 두렵지 않아 공개처형, 그래서 여기 나왔다. 공개 오디션…”
탈북 이후 랩을 처음 접한 ‘늦깎이 래퍼’ 강씨의 실력은 어릴 적부터 국내외 다양한 힙합 음악을 들으며 자란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척추결핵으로 고생했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쓴 직설적인 가사, ‘결핵·북핵’, ‘공개오디션·공개처형’을 대비한 감각적인 운율, 주눅이 들지 않은 그의 눈빛은 심사위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결국 그는 3천명이 넘는 지원자 중 80여명을 추려내는 1차 예선에서 당당히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북한에서 ‘따분한’ 선전가요만 듣고 자라난 그가 처음 랩을 접한 것은 1998년 북한을 빠져나와 중국에서 생활할 때라고 했다.
한류 열풍이 한창이던 중국에서 들은 가수 유승준의 랩은 억눌렸던 10대 사춘기 소년에게 큰 충격을 줬다. 특히 저항적이고 비판적인 가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중국 공안의 추적을 피해 캄보디아, 베트남 등을 돌며 느꼈던 외로움과 두려움을 힙합 음악을 통해 위로받았고 그렇게 ‘힙합 마니아’가 돼갔다.
그가 올해 초 한 시민단체와 북한 인권을 알리기 위한 기금 마련 활동을 하던 중 홍보 활동 차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 제안을 받았을 때 힙합을 떠올린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오디션 프로그램 1차 예선을 통과한 그는 2차 예선에서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강씨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가수 양동근과 작곡가 우디 박의 도움을 받아 연내 출시를 목표로 음반을 준비 중이다.
앨범에는 북한 인권을 고발한 노래뿐만 아니라 오디션에 탈락한 뒤 아쉬움과 희망을 담은 곡, 또래 남한 청년과 함께 꿈과 고민을 나눈 곡 등 ‘탈북자’로서의 정체성을 살린 다양한 주제의 노래를 실을 계획이다.
그는 음악 활동과 함께 홍익대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력을 살려 그림을 통해 북한 인권을 고발하는 활동도 이어가겠다는 ‘종합 예술인’으로서의 포부도 밝혔다.
”제 노래나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북한이나 탈북자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잘 알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 통일이 됐을 때 남북 청년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미술·음악인으로서 제 꿈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