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룰라 출신 방송인 이상민(43)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1994-2003, 2004-2013, 2014-영원히’란 머리말이 있다.
1994년 룰라로 데뷔해 10년간 화려한 20대를 누렸고, 2004년부터 사업 부도로 빚더미에 앉아 10년간 불행한 30대를 지냈으며, 2014년부터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의미이다.
최근 화제 속에 종영한 엠넷 모큐멘터리(가상 다큐) ‘음악의 신 2’는 이상민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뼈대로 제작됐다.
부도와 이혼, 자살 소동 등 이상민의 ‘흑역사’가 독하게 까발려졌고, 그의 ‘어이상실급’ 허세가 브레이크 없이 펼쳐져 연방 폭소가 터져 나왔다. 현실과 허구를 오간 이 프로그램은 ‘병맛’(‘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다’는 뜻의 인터넷 신조어)과 ‘B급 정서’를 대표하는 예능 브랜드로 우뚝 섰다. 제작진도 밝혔듯이 한 마디로 이상민이 아니면 기획되지 않았을 프로그램이다.
요즘 ‘핫’하게 재도약한 이상민을 최근 종로구 수송동에서 만났다. 채무가 69억8천만원에 달해서 ‘21세기 빚쟁이’, 예능감을 찾았다고 해서 ‘예능 갱생’이란 수식어도 붙었다. 현재 4개 프로그램의 MC 또는 고정 출연자여서 며칠 만에 시간을 쪼개 인터뷰가 성사됐다.
“셀프 디스 덕인지 요즘 호감 이미지로 반전됐다”는 말에 그는 “길거리를 다니면 ‘이상민도 열심히 사는데 나도 포기 안 하겠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어쩌다가 ‘희망의 아이콘’이 됐나 보다. 그저 솔직함, 진심이 전해진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YG도 우리 회사 밑으로 들어와야 한다”, “(LTE를) 나스닥에 상장한다”, “MC해머랑 친하다”던 폭풍 허세와 달리 TV 밖에선 진지했다. 예전의 까칠한 구석도 없었다. 돈을 갚아나가고자 삶의 패턴을 완전히 바꾸고 일만 하고 있다고 했다.
“술이 없으면 못 잘 정도로 1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먹었어요. 그래서 ‘음악의 신 1’ 때는 술로 찌든 동그란 얼굴에 피곤한 표정이었죠. 저런 모습은 아니다 싶어 금주하니 살도 빠졌어요. 계획된 삶을 산지 2년 됐습니다.”
인기 가수에서 디바와 샤크라 등을 배출한 제작자로 성공했던 이상민은 ‘음악의 신 2’에서 탁재훈과 공동 설립한 LTE엔터테인먼트를 최고의 기획사로 만들고자 걸그룹 C.I.V.A를 육성한다.
허구와 실제가 뒤섞여 대본과 애드리브의 경계가 궁금했다.
그는 “시즌1 때는 대본을 줘도 이해 못하고 찍었다. 상황 설정대로 찍어 모큐멘터리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줬다”며 “시즌2에서는 대본을 소화하되 내 방식대로 찍었다”고 차이를 설명했다.
이번 시즌의 인기에 대해선 아낌없이 망가져 준 게스트들의 공도 있지만 탁재훈과의 ‘케미’(호흡)를 첫손에 꼽았다.
“시즌2로 갈 수 있었던 건 탁재훈 형 덕이에요. 함께 찍을 만한 소재가 충분한 파트너거든요. 데뷔 때부터 같은 회사 연습생이었고 동네 형이었죠. 둘 사이에서 만들어질 과거 이야기가 풍부했어요.”
그는 3년 전 탁재훈이 바쁘다며 만나주지 않자 우스갯소리로 “재훈이 형 3년 쉬게 할 거다”는 말을 했는데 많이 후회했다고 웃었다. 도박 혐의로 방송 활동을 중단한 탁재훈은 2년 3개월 만에 이 프로그램으로 복귀했다.
“재훈이 형이 ‘음악의 신 2’ 찍으려고 쉬었다고 능청을 떨었죠. 둘이 세상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거라고 말했어요. 예전에 까칠한 저를 보기 싫어한 가요 관계자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무시당하며 망가지는 제 모습에 ‘대박’이라며 고소해 하더라고요. 하하.”
‘음악의 신 2’ 최고의 명장면으로는 정진운이 출연한 ‘춤신춤왕’을 꼽았다. 보컬 그룹 2AM에 이어 밴드로 활동 중인 정진운은 ‘몸치’임에도 ‘춤신’으로 등장해 C.I.V.A에게 안무를 전수하며 우스꽝스럽게 망가졌다.
그는 “그 장면을 찍을 때 마음속으로 ‘큰일 났다. 안 웃길 것 같다’고 걱정했다”며 “진운이의 바지 옆선 장면 등 대본에 없는 내용을 나름 제 순발력으로 만들어 찍었다. 그런데 크게 화제가 됐고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레전드 영상이 됐다”고 웃었다.
C.I.V.A를 키우며 과거 기획사 상마인드를 운영하던 시절도 떠올랐을 터. 디바, 샤크라, 샵 등을 성공시킨 제작자이자 프로듀서였던 그는 그룹 엑스라지와 큐오큐가 실패로 끝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생각 많이 났죠. 가수, 프로듀서의 삶을 가장 길게 살았으니까요. 프로듀서는 공부해서 성공하는 직업이 아니에요. 본질적인 감각이 평생 가는 건데 프로듀서로서의 생각을 머릿속에서 놓은 적이 없어요. 음악과 동떨어져 살 때도 이렇게 기획하고 싶다고 늘 생각했으니까요. 여전히 제 마지막 직업은 프로듀서입니다.”
이어 실패 원인에 대해선 “엑스라지와 큐오큐 시절 음악사이트도 없고 불법 음원이 판치는 때였는데 음악을 공짜로 듣는 세상이 온다고 생각했다”며 “음반 사업만으로 힘들다고 생각해 사업을 다각화시킨 게 문제였다. 온라인 쇼핑몰, 아카데미 등 계열사를 늘렸고 결국 2005년 11월 3일 지주사이던 상마인드가 부도처리 됐다”고 돌아봤다.
독하지만 위트 있는 입담으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워너비 출연자’가 됐지만 수익은 모두 부채를 갚는 데 쓰고 있다.
그는 “3년, 5년이면 (빚을 갚게) 되겠지 한 게 10년이 흘렀다”며 “예전에는 가진 게 많아도 불만투성이였고 만족하지 못했다. 지금은 빚을 갚으면서 하루하루 일하고 있지만 채무가 줄어드는 기쁨과 돈의 소중함을 느낀다. 10년간 강해졌고 늘 하는 얘기인데 행복하고 감사한 매일”이라고 강조했다.
‘음악의 신 2’에선 이런 장면이 나온다. ‘쉬즈 곤’으로 유명한 스틸하트의 보컬 밀젠코 마티예비치가 출연했을 때다. 마티예비치가 “옛날 매니저가 돈을 몽땅 훔쳐간 적 있다”며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자 이상민은 한 수 더 뜬다.
“제 아픔이 좀 더 비거 사이즈(bigger size). 채무 아냐? 전화 안 받으면 베리(very) 의심. 사금융 아냐? 베리 빅(very big) 이자. 에브리데이(everyday) ‘여보세요, 여보세요, 곧 갚을게요’. 하지만 전 행복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음악이 있으니까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