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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7억짜리 초호화 세트장에서 만난 배우 유준상

“저희 집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처음엔 엄청 넓었는데 이젠 좀 좁아 보이는 것 같네요.(웃음)” 지난 9일 경기도 남양주의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극본 정성주· 연출 안판석)의 세트장. 총 300평에 7억 5000만원을 들여 지은 세트장의 중앙에 선 주인공 유준상과 유호정은 마치 자신의 집처럼 취재진을 맞았다. 벽 한쪽에 걸린 가족 사진이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유준상은 “이렇게 고가의 소품이 많은 세트장은 나도 처음이다. 슬리퍼까지도 격에 맞추느라 최고급”이라며 웃었다. “그동안 작품에서 ‘갑’의 역할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거의 ‘을’이었죠. 이번에는 연기하면서 때론 이 집이 내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하하. 한정호(극중 인물)는 아직도 파헤쳐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요. 우리 사회에 필요악인 인물이지만 실제로 이런 인물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연기를 합니다.”

유준상
인기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제왕적 권력을 누리는 로펌 대표 변호사 한정호를 맡아 열연하고 있는 유준상(46). 대한민국의 ‘슈퍼갑’으로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상류층의 면모를 때로는 서늘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등 주로 건강하고 자상한 역할을 맡아 온 그는 “이렇게 복잡한 캐릭터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지적인 역할도 처음”이라면서 말문을 열었다.

“변호사들에 관한 책도 읽어 보고 팟캐스트에서 관련된 내용을 들어 보기도 했죠. 드라마 대사에 나오는 인물들을 지식백과에서 찾아보다 보니 지식이 쌓여 가고 있어요, 하하. 한정호는 말 한 줄조차 문법에 최적화된 단어를 구사하는 캐릭터라서 어법 하나, 장단음까지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부부로 출연 중인 유호정(왼쪽)과 유준상이 경기도 남양주 드라마 세트장에서 부부 침실을 소개하고 있다. 방송 중 이례적으로 커플 CF까지 찍은 이들은 “설정상 부부가 늘 등을 돌리고 자는 침실”이라며 익살맞게 웃었다.<br>SBS 제공
아기를 좋아하는 것을 빼고는 실제 자신의 성격은 한정호와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는 그다. “코미디와 깊이 있는 연기 사이에서 표현의 ‘줄타기’를 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한정호는 여러 가지 상황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집에서는 조금만 아파도 꾀병을 부리잖아요. 큰 사건은 쥐락펴락하면서 작은 통증에는 참을성이 없는 아이러니한 인물이죠.”

그는 “잔인한 장면이나 욕설 하나 나오지 않고서도 보는 사람을 쥐었다 놨다 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힘”이라고 자평했다. 이 작품은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과정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연기자로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저도 연기하면서 마음이 편치는 않아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도 신랄하게 풍자하는 것이 드라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바라보는 한정호는 된 사람, 난 사람, 든 사람의 면모를 전부 다 갖고 있어서 더 어렵고 입체적이다. 그래서 최대한 애드리브를 자제하고 대본에 충실해 인물을 표현하려 한다.

“대본을 보고 약간은 꾸민 듯한 연극 투의 말투를 떠올렸죠. 감독님도 과장된 몸짓은 마음껏 하라고 했어요. 드라마에서 대사 외적인 애드리브는 한 단어도 해 본 적이 없어요. 공연을 많이 하다 보니까 정확하게 계산된 작품으로 승화해서 웃음을 주는 데 더 익숙하거든요.”

그래서 정작 그는 웃지 않는데 주변 배우들이 웃는 바람에 NG가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딱 하나 애드리브가 들어간 장면은 한정호가 사돈 앞에서 자신을 욕보이는 아들 한인상(이준)을 잡아채려고 난간을 넘어가려다가 가랑이가 끼는 이른바 ‘낭심 사건’이다. 그는 “리허설 때 그 ‘사건’이 일어났는데 스태프들이 배꼽을 잡자 즉석에서 감독이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그 상황을 추가했다”고 귀띔했다.

올해 데뷔 20년째. 배우로서 그의 원동력은 연출자와의 교감에 있다. 그는 “배우는 연출자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제멋대로 만들면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작품이 잘 보여야 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배우”라고 말했다. 책을 쓰고 음반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모두가 더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한 밑거름이다.

“뮤지컬을 하다 보니 노래가 좋아졌고, 기타를 배우다 보니 노래를 만들게 됐어요. 감성이 메마르면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노래를 통해 젊은 친구들과 교감하고 감성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저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나 할까요?(웃음)”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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