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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이자 스승이던 아버지를 잃은 소년의 성장통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만큼 아름답고도 슬픈 일이 있을까. 세월은 무심한 듯 아이의 여린 육체와 정신을 뒤흔들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누구나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 뿐이라는 위로도 어른이 된다는 사실의 서글픔을 무마시킬 수는 없다. 26일 개봉한 ‘허니’는 그 통과의례를 고요히, 그러나 혹독하게 당면하고 있는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첫 장면에서 카메라는 벌통을 설치하기 위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유수프(보라 알타스)의 아버지 야쿱(에르달 베식시오그루)을 롱테이크로 관찰한다. 자연에 둘러싸인 한 인간과 침묵 속에도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은 축소된 삼차원의 우주를 보여줌과 동시에 이 영화의 주제를 집약하고 있다. 한없이 조심스러우면서도 절박함이 느껴지는 야쿱의 느린 움직임은 나무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하는 다음 장면의 위태로움을 배가시킨다. 유수프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자 스승인 아버지와의 유대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단선적인 궁금증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간의 성장과 자연의 섭리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지면서 시종일관 잔잔한 ‘허니’의 긴장감을 이끌어간다.

학교생활조차 녹록지 않은 말더듬이 유수프는 아버지를 따라 벌꿀을 채취하거나 아버지의 귀에 속삭이듯 마음을 털어놓는 것 외에는 즐거운 일이 없다. 그에 반해 성실하고 따뜻하지만 다분히 현실적인 어머니의 염려와 잔소리는 유수프에게 또 다른 짐일 뿐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유착은 성장드라마에 있어 다소 생소하다고 할 수 있는데, 야쿱이 간질로 쓰러지는 장면에서 그 어색함이 얼마간 해소된다. 유수프에게 아버지는 해결사이기 이전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체적 연약함을 가진 애틋함과 돌봄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벌통을 설치하기 위해 멀리 떠난 야쿱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아들은 점차 관습적 구조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깨닫게 된다. 아침 식사를 앞에 두고 훌쩍거리는 어머니를 바라보던 유수프는 그토록 싫어하던 우유를 단숨에 들이켠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부탁한,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아들의 의무를 나름의 방식으로 수행한 것이다. 그날, 유수프는 학교에서도 마지막 남은 칭찬 배지를 받는다. 여전히 말을 더듬는 여섯 살 꼬마에게 이 성급한 보상은 인간의 성장이 자발적이기보다 외부에 의해 촉구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유수프가 그토록 욕망하던 칭찬 배지는 아버지의 부재와 동시에 찾아온 성장에 대한 압박이자 ‘사회’로의 초대이다.

물론 위안도 있다. 신령하고 위엄 있는 존재로서 영화의 미장센을 압도하는 터키 고산지대의 숲은 유수프에게 삶의 동력을 선사한다. 세미 카플라노글루 감독은 그렇게 유수프를 자연의 일부로 위치시키면서 영화를 맺는다. 영화의 시작부터 함께했던 숲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신비로운 위용을 드러낸다.

탁월하고 정성스러운 촬영이 백미(白眉)라면, 음악 대신 삽입된 자연의 다채롭고 영롱한 소리들은 사치스러운 덤이다. ‘허니’는 타르코프스키와 브레송, 베리만의 자장 아래 있으면서도 영상의 현대적 세련미가 더해져 카플라노글루 감독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엿보게 한다. 무엇보다 그가 어린 시절 자주 거닐었다는 장중한 아나톨리아 숲의 정기(精氣)가 깊숙이 영혼을 불어넣어 준 작품이다. 103분. 전체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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