젭과 함께 로마의 주요 관광지와 예술품을 훑어보는 여정은 얼핏 저 유명한 고전영화 ‘로마의 휴일’이나 우디 앨런의 근작 ‘로마 위드 러브’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이 영화는 훨씬 덜 낭만적인 주제에 집중한다. 도시의 외관에 기대어 본래 모습을 감춘 채 살아가는 로마 상류층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면서 젭의 고민에 관객 모두를 동참시키는 것이다. 모두가 예술가를 꿈꾸는 이 욕정의 도시는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점차 그 실체를 드러내는데, 이것은 진정한 미(美)를 찾는 과정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한편 이 영화는 한 가지 사건의 기승전결 대신 수많은 캐릭터의 등장과 퇴장으로 전개된다. 140분이나 되는 러닝타임은 현대 로마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인물의 선형적 콜라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초반부에 등장하는 젭과 사이비 행위예술가의 인터뷰는 미의 절대적인 기준이 사라져 버린 후 등장한 가짜 예술의 허울을 조롱한다. 또한 단골들로부터 돈을 쓸어 담는 피부과의 우스꽝스러운 풍경, 자녀의 예술적 재능을 이용해 돈을 챙기는 부모의 모습은 미와 자본이 어떻게 결탁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직설적인 예다. 무엇보다 영화의 종결부에 등장하는 성녀 마리아는 아름다움의 비밀에 대한 감독의 결론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104세의 성녀는 젭에게 ‘뿌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재의 로마를 만든 역사와 문화, 젭의 소설을 있게 했던 첫사랑의 기억은 모두 그녀가 말한 ‘뿌리’와 연결되는 것이다.
‘일 디보’(2008)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바 있는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탁월한 지성과 타고난 감성을 조화시켜 동시대의 ‘로마’를 진단해 냈다. 뿌리에 대한 관심 덕분일까. 페데리코 펠리니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이탈리아 감독의 재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12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윤성은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