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걷잡을 수 없이 클레어에게 빠져드는 버질과 달리, 관객들은 그녀의 미심쩍은 행동들에 주시하며 그녀가 ‘팜므파탈’, 즉 남성들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여성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심증을 갖게 된다. 관객과 영화 사이에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버질을 불행에 빠뜨릴 수 있는 또 다른 용의자들이 추가되면서 게임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버질의 연애상담을 해주던 기계수리공 로버트는 클레어를 직접 본 후 그녀에게 반한 것처럼 묘사되고, 버질에게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화가 빌리에게서도 강한 동기가 발견된다. 카메라는 여러 시점(視點)과 기교를 사용해 이 세 사람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또 빼앗기를 반복하며 130분간의 호흡을 조절해나간다. 로버트가 복원하던 보캉송의 로봇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승자가 호명될 때까지, 관객들은 이 두뇌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많은 톱니바퀴가 맞물리고 자잘한 부속품들이 합을 이루어 완성된 로봇처럼, ‘베스트 오퍼’는 단서들을 일부러 떨어뜨려 놓고 관객들이 관람 행위 가운데 능동적으로 결합시키도록 정교하게 구성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그 결말이 수많은 ‘반전’(反轉)을 마주했던 우리들에게 새로운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게임이 끝난 후에도 ‘모조품 속에 숨어 있는 진품의 면모’, 즉 위조된 관계 안에 싹튼 진정한 사랑을 믿는 버질의 순애보는 두뇌 싸움의 짜릿함을 넘어 ‘베스트 오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모든 것을 잃은 듯 보이지만 그는 생각보다 행복한 사람일지 모른다. 인생의 황혼기에 평생의 결벽증을 고쳐준 베스트 오퍼를 만났으니까.
스릴러와 멜로드라마를 유려하게 넘나드는 연출력에서 과연 이탈리아의 거장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위엄이 느껴진다. ‘시네마 천국’을 합작했던 엔니오 모리코네의 OST 또한 첫 장면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며 유수의 명화들과 더불어 영화에 품격을 더한다. 눈과 귀의 호사가 황홀한 작품이다. 12일 개봉. 15세이상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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