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의 영향이 크다. 지난달 11일 개봉한 ‘킹스맨’은 뒤늦게 입소문을 타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뒤 상위권에서 내려올 줄 모르며 벌써 53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킹스맨’은 폭력을 비틀어 조롱하고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킹스맨’ 자체의 폭력 수위 역시 그만큼이나 높다. 사람의 몸이 잘려나가고, 핏줄기가 솟구치는 것은 기본이다. ‘살인의뢰’에서 사이코패스의 폭력이나 그에 맞서는 복수의 폭력 장면들은 고개를 절로 돌리게 만든다. ‘런 올 나이트’는 앞의 두 영화보다는 수위가 조금 덜하긴 하다. 하지만 노년의 액션배우 리암 니슨이 특유의 노익장 액션으로 청불 등급을 받았다.
이 밖에 최근 개봉했던 ‘순수의 시대’는 붉은빛과 함께 연속된 살구빛과 분홍빛 장면들이 청소년들의 관람을 가로막았고 ‘헬머니’는 만약 TV였다면 대부분의 대사가 ‘삐삐삐리리’로 뒤덮였을 정도로 농도 짙은 ‘욕설 액션’의 향연이 이어진다. 앞으로도 ‘마담 보바리’, ‘팔로우’ 등 청소년들에게 권할 수 없는 애정물, 공포물 등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수치로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24일 영화진흥위 영화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청불 영화의 관객점유율은 33.4%로 역대 최고다. 최근 7~8년 같은 기간을 비교했을 때 청불 영화의 관객점유율은 대부분 10% 남짓에 머물렀다.

1~3월은 특히나 겨울방학, 설날, 봄방학 등이 끼어 있기 때문에 중·고등학생이 주된 관객층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을 잡아야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불문율에 가까웠다. 지난해만 봐도 15세 이상 볼 수 있는 영화가 50.2%의 점유율을 차지했으며 2013년에는 68.0%로 극장가를 아예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그러므로 이들을 관객 대상에서 배제해야만 하는 청불 등급 영화가 올해처럼 흥행몰이를 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청불 영화가 급증한 배경에 대해서는 몇 가지 분석이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심의기준이 들쑥날쑥한 데다 보수화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는 영화업계 현장의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비약적으로 성장한 부가판권 시장을 겨냥해 성인물 제작이 늘어난 결과라는 해석이 있다.
한 영화 홍보마케팅사의 대표는 “영화제작사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기 위해 자체적으로 편집을 하는 등 안간힘을 쓰지만 영등위가 판정하는 등급 결과는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면서 “영등위 심의가 최근 보수적인 추세로 바뀐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최근 본 ‘런 올 나이트’의 폭력은 그렇게 잔인하지도 않은데 도대체 왜 청불 영화로 분류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킹스맨’의 경우 미국에서는 17세 미만이라도 부모와 동반하면 관람할 수 있는 R등급을 받았고 영국에서는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안치완 영등위 정책홍보부장은 “2012년 영화등급분류 편수가 처음으로 1000편을 넘어섰고 올해는 1500편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등 영화시장 규모 자체가 점점 커지고 있다”면서 “이는 최근 IPTV, 온라인 VOD서비스 등 다양한 채널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부가시장 판권을 겨냥한 성인물이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