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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내린 터널 속에 혼자 고립된 한 남자의 생존기를 그린 ‘터널’은 온전히 하정우의 연기에 기댄 영화다.
남편의 구조를 기다리는 아내 역은 배두나, 구조를 책임지는 구조본부 대장역은 오달수가 맡아 열연하지만,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것은 하정우의 몫이 가장 크다. 이미 영화 ‘더테러 라이브’를 통해 ‘원맨쇼’가 가능함을 보여줬던 하정우는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특유의 넉살과 유머를 발휘하며 극의 숨통을 틔운다.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하정우를 만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아파하고 고통스럽기만 한 영화라면 애초에 선택 안 했을 거에요. 아무리 코너에 몰렸어도 희로애락이 있을 거로 생각했죠. 그래서 극한 속에서도 한 번쯤 숨을 쉬며 쉬어가는 곳에서는 일부러 더 코미디로 무장하려고 했습니다.”
팔다리만 겨우 펼 수 있는 좁은 공간 속 그에게 남겨진 것은 생수 두 통과 휴대전화, 딸의 생일 케이크, 자동차 워셔액 등뿐이다. 이는 ‘생존 키트’이자 극의 전개와 유머를 풍부하게 하는 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정우는 극 중 살아남기 위해 생수통에 눈금을 그려 일정량만 마시고, 손가락으로 생크림 케이크를 조금씩 찍어 먹는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바깥 세계와의 통화도 제한한다. 구조될 수 있다는 희망 속에 나름의 생존 규칙을 만들어 지켜나간다. 재난영화 속 낯익은 장면이면서도 차이가 있다.
“통상의 재난영화들은 극의 후반부에 재난이 터지고 주인공들이 고통을 받은 뒤 엔딩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5분 만에 터널이 무너지죠. 그래서 나머지 1시간 50분가량을 끌고 가기 위해 강아지 탱이의 출연처럼 몇 군데 터닝포인트가 등장합니다.”
영화에서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도 비교적 담대한 모습을 보여준 하정우지만, 실제 그런 일이 닥치면 어떨까.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저는 엘리베이터만 멈춰도 숨이 막혀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놀이기구도 못 탑니다. 영화 속 헬기 타는 장면도 촬영을 끝까지 고사하다가 배두나 씨가 흔쾌히 응하는 바람에 저도 어쩔 수 없이 찍은 겁니다.”
하정우는 터널 안에 갇힌 주인공의 외적인 변화에도 신경을 썼다. 그는 “수척해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운동과 음식 조절을 통해 체중을 뺄 만큼 뺐는데, 영화 속에서는 막상 별로 티가 안났다”며 아쉬워했다.
하정우는 영화 흥행을 위해 각종 인터뷰 등 홍보 일정을 강행 중이다. 배우로서 개인적인 흥행 욕심도 있지만,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김성훈 감독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가 크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김 감독의 인간적 매력에 흠뻑 빠졌다”면서 “주연 배우로서 연기 외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