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유혈분쟁을 잠시 떠올려 보시길. 그러니까 에이브라함 부모의 결혼부터가 놀라운 사건이었다. 원수 가문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비극적 결말 대신 해피엔딩을 맞았다는 의미니까.
그러나 결혼이 극의 진짜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사실은 오늘날 상식이다. 더구나 이들에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친척들이 모이는 날은 치열한 설전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에이브라함은 가족 간의 감정 다툼에 힘들어한다. 유대인이기도 하고 무슬림이기도 한 그에게 어느 한쪽만을 택하라는 친척들의 요구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에이브라함은 똑똑한 아이다. 그는 양쪽 다 경험하면서 자기만의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한다. 에이브라함 스스로가 본인의 애칭을 정한 것이 그 사례 중 하나다. 나의 이름을 직접 짓는 행위는 주체적 결단의 표명이다. 그는 자신이 ‘에이브’(이 영화의 원제)이기를 원한다.
에이브의 요리를 먹고 친척들의 관계가 좋아질까? 갑자기 그럴 수 있을 리 없다. 이 영화는 마법의 묘약이 나오는 판타지 장르가 아니다. 다만 이 정도는 언급할 수 있겠다. 에이브의 요리로 인해, 대립이 아닌 조화를 간절히 바라는 그의 소망이 담긴 음식 덕분에, 친척들 사이에 대화의 물꼬가 트이게 되었다고 말이다. 요리는 기술인 동시에 예술이다. 그래서 치코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요리를 만들면 안 된다고 에이브에게 조언해 주었다. 마음을 다한 결과물이 상대에게 반드시 가닿지는 않을 테다. 하지만 상대에게 가닿은 것은 전부 마음을 다한 결과물이다. ‘에이브의 쿠킹 다이어리’에는 이런 삶의 교훈이 적혀 있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