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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도망친 여자’

홍상수·연인 김민희 함께한 7번째 작품
서사 요소 배제… 단편소설 3개 이은 듯
옛 인연 ‘불쑥’ 찾아가 서투른 관계 맺기
‘찌질한 남자’는 영화 전개 큰 영향 안 줘
영화 ‘도망친 여자’ 촬영 도중 홍상수(왼쪽) 감독이 자신의 연인이자 페르소나인 김민희(가운데), 영순 역의 서영화와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 감독과 김민희가 작업한 일곱 번째 영화인 ‘도망친 여자’는 마치 단편소설집을 보는 듯 관계에 대한 잔잔한 파문을 그린다.<br>영화제작전원사 제공
홍상수 감독에게 은곰상을 안긴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카를로 샤트리안은 그의 영화를 두고 “에리크 로메르나 우디 앨런과의 비교를 멈추고, 안톤 체호프에 관해 얘기할 때가 됐다”고 했다. 안톤 체호프가 누구인가. 풍자와 유머, 애수가 담긴 명단편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소설가다. 지금껏 홍상수가 빚어낸 영화들은 길이는 장편이어도 작법은 단편소설에 가까웠다. 서사가 배제된, 거친 줌인·줌아웃을 반복하며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 작은 파문들을 들여다본다.

영화(17일 개봉) ‘도망친 여자’는 남편과 꼭 붙어 지내던 여자 감희(김민희 분)가 그가 출장을 간 사이 옛 인연들을 만나러 다니는 이야기다. 감희 시점에서 차례로 영순(서영화 분), 수영(송선미), 우진(김새벽)을 만나 펼치는 에피소드는 단편 소설 3개를 이은 연작처럼 보인다. 감희의 인생에서 이들이 오랜만이라면, 이들에게는 감희가 ‘불쑥’이라 소통은 매끄럽지가 않다. 채식을 주로 하는 영순에게 감희는 고기를 사고, 머리를 자른 감희에게 영순은 “집 나간 고등학생 같다”고 한다. 한때 같이 ‘까불고 놀았던’ 수영에게 자신의 옷 한 벌을 선물하지만, 수영은 ‘썸 타는 윗집 남자’와 돈 자랑을 하며 크게 감희에게 감사하지도 않는 것 같다.

서투른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감희는 여자들이 연대하는 방식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항의하러 찾아온 이웃 남자를, 영순은 함께 사는 룸메이트 여성과 점잖지만 결연하게 맞받는다. 이웃 취준생이 감희에게는 불청객처럼 느껴지지만, 영순에겐 담배를 함께 태우고 애환을 나누는 이웃이다. 이 과정에서 홍상수 영화 특유의 ‘찌질한 남자’는 한참 주변화됐다. 고양이가 불편하다며 항의하는 이웃, 하룻밤 잔 것으로 매달리는 남자 등 뒷모습으로만 나타날 뿐, 영화의 전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우진과의 만남이 감희에게는 극적이다. 작은 영화관을 운영하는 우진은, 우연히 만난 감희에게 옛 일을 사과한다. 우진의 남편인 정 선생(권해효 분)은 감희의 옛 연인이다. 정 선생과 간만의 해후에서, 감희가 내뱉는 언사들은 그간의 여정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그사이 감희가 성장했음을 나타낸다.

영화는 홍 감독에게 스물네 번째 장편이고, 연인이자 페르소나인 김민희와 함께한 일곱 번째 작품이다. 그들의 사랑이 공개돼 세간의 지탄을 받은 후, 홍 감독의 세계관은 어느새 ‘김민희 연작 소설’처럼 이어져 온다. ‘도망친 여자’는 더욱 여성을 전면에 세웠으되, 찌질한 남자로 대표되는 일련의 남성상, 어딘가 모르게 부유하는 여성 주인공이 동어 반복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의 영화를 계속 보아 온 국내 팬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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