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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이자 테러리스트 그녀의 위험하고 슬픈 선택

북아일랜드는 영화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분쟁 지역 중 하나다. ‘마이클 콜린스’ ‘아버지의 이름으로’ ‘블러디 선데이’ 같은 영화들은 주로 북아일랜드의 시각에서 영국의 비인간적인 대응을 비판적으로 다루곤 했다. 영국과의 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요즘도 과거 이야기는 계속 영화화되고 있는데, 과거를 잊는 게 주특기인 한국영화와 비교해 볼 부분이다. 근작 가운데 주목할 작품은 단식 투쟁을 벌이다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바비 샌즈의 일화를 다룬 ‘헝거’다. 신이 내린 엄숙한 사명인 생존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지킨 남자의 이야기는 현실 정치를 신과 인간의 영역으로 확장해 놓았다. 단식 투쟁을 결정한 샌즈에게 신부가 찾아와 묻는다. “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감상적인 접근을 거부했던 샌즈에게도 자식은 마지막 통증이었을 것이다.

1990년대 초의 북아일랜드 분쟁을 배경으로 한 ‘섀도우 댄서’는 테러리스트이자 엄마인 콜레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테러리스트가 왜 험난한 길을 가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영화는 드물다. ‘섀도우 댄서’는 콜레트가 걸어온 모순적인 삶의 문턱에서 시작한다. 1973년 콜레트는 아빠의 담배 심부름을 동생에게 떠넘겼다. 칭얼대며 거리로 나섰던 동생은 시위 도중 날아온 총알을 맞아 숨을 거두고, 어린 아들의 죽음을 목격한 아버지는 콜레트가 보는 앞에서 문을 닫아 버린다. 아버지의 증오 어린 눈빛과 동생의 죽음을 가져왔다는 죄책감. 상처를 안고 성장했을 소녀가 복수의 심정으로 테러리스트가 된다는 설정인데, 영화의 아이러니는 동생에게 박힌 총알이 IRA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20년 후 콜레트는 정말로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여린 심성 탓에 그녀는 행동할 때마다 갈등을 거듭한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의 테러리스트, 콜레트는 슬픈 테러리스트다. 폭발 임무를 띠고 런던 지하철에 잠입했으나, 그녀는 타이머를 작동하지 않은 채 폭탄을 두고 나오다 경찰에게 붙잡힌다. 영국 정보부 요원인 맥은 그녀의 약점을 알고 접근한다. 콜레트는 아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협박에 못 이겨 이중 스파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콜레트는 ‘헝거’의 샌즈와 반대의 인물이다. 초인적인 샌즈와 달리 콜레트는 인간적이고 나약하다. 그렇다고 해서 콜레트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녀는 죽음과 폭력이 없을 거라는 달콤한 유혹을 순진하게 믿었을 뿐이다. 평생 살얼음판 위를 걸어온 인간이 유혹에 넘어갔다고 빈정거린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섀도우 댄서’에는 두 명의 어머니가 나온다. 콜레트의 아픔 뒤로 숨겨졌던 콜레트의 어머니가 스크린 앞으로 성큼 나서는 순간 필자는 ‘헝거’에서 신부가 샌즈에게 던진 질문을 다시 생각했다. ‘새도우 댄서’의 두 어머니는 샌즈가 거부했던 지점에 서기를 선택한다. 두 여성은 미래를 담보로 현실의 고통을 목구멍으로 삼키기로 한다. 진짜 강한 사람이 두 어머니인지 샌즈인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제임스 마시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이로 이따금 드라마를 내놓는 감독이다. 그의 2005년 작품 ‘더 킹’은 부정을 구하는 아들과 그것을 거부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섀도우 댄서’와 어긋난 짝을 이룬다. 마시는 영화를 통해 인간이란 존재가 취하는 여러 삶의 양상을 탐구하는 듯하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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