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개봉 앞둔 영화 ‘내 심장을 쏴라’ 주인공 18세 배우 여진구

“목소리 콤플렉스가 컸죠. 제가 중학교 때 변성기를 심하게 앓아서요.”

중저음의 목소리가 척 가라앉아 찻집 천장과 바닥 사이에서 웅웅거렸다. 이런저런 세상사 두루 겪은 30대가 잔뜩 무게 잡은 듯한 목소리다. 인사를 건네며 웃으니 크고 둥그런 눈이 이내 얕은 접시가 엎어진 것처럼 부드럽게 휘어진다. 요즘 대한민국 누나들을 한껏 달뜨게 한다는 예의 그 미소다. 배우 여진구(18)다.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영화 ‘내 심장을 쏴라’에서 정신병원 환자를 연기한 배우 여진구. 인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어린 세자 역할을 한 게 불과 3년 전인데, 어느새 풋내 나는 소년 티를 싹 벗었다.<br>스포츠서울 제공
이 멋진 청년은, 아니 이 멋진 청소년은 1997년 8월생, 이제 만 17세 5개월을 넘겼다. 친구들과 축구, 농구하며 정신없이 뛰어다니거나 PC방에 몰려가 함께 게임을 하는 게 마냥 즐거운 나이다. 이제 곧 3학년에 올라가니 과연 1년 뒤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슬며시 입시 걱정도 드는 고등학생이기도 하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찻집에서 여진구를 만났다. 여진구는 오는 28일 개봉을 앞둔 ‘내 심장을 쏴라’에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정신병원 환자 수명을 연기했다. 영화 속에서 ‘미쳐서 갇힌’ 수명이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자기 안에 갇힌 채 숨고 싶어 하고, ‘갇혀서 미친’ 승민이(이민기)는 끊임없이 세상으로 나아가려 한다. 소설가 정유정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배우 여진구
“목소리 때문에 늘 자신감도 없었고 소극적이었고, 목소리 자체가 콤플렉스였는데 나중에 주변에서 목소리 좋다는 칭찬을 많이 해주시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북받치기도 했죠. 이젠 이 목소리가 저한테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운 오리새끼가 훗날 백조가 돼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듯 이제 선배 배우들이 부러워하는 ‘미운 오리새끼의 목소리’를 가진 여진구이니 ‘내 심장을 쏴라’에서 연기와 함께 목소리로 영화를 끌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3년 다큐영화 ‘의궤, 8일간의 축제’에서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여진구는 “시나리오보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어서였는지 촬영 초반에 수명이를 연기하면서 많이 경직되기도 하고, 헷갈렸던 것도 같다”면서 “문득 수명이처럼 소설 안에 너무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치자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고 말했다. 벌써 10년의 관록을 가진 배우다. 2005년 영화 ‘새드 무비’로 데뷔한 뒤 영화와 TV를 오가며 쉼없이 찍고 또 찍었다. 2013년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로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영화계에서 그를 ‘아역배우’가 아닌 배우의 한 사람으로 공식 인정한다는 상징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여진구의 연기관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그는 “지금껏 연기하면서 아역과 성인 연기를 따로 나누지는 않았다”면서 “그 역할에 몰입하며 분석하고 체화하는 것은 아역이나 성인역이나 모두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단호하다. 하지만 세상의 눈은 그 둘을 분명히 나누는 것 또한 현실임을 그 또한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학교 수업도 빠져야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급한 마음에 오가는 상소리를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등 영화판의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어린아이들이 이해하고 공유하기에는 간극이 크다. 어느 촬영장이건 촬영 기간 동안 아역 배우들에게 부족하게나마 나름의 배려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아역배우들이 성인배우가 되고픈 이유는 (배려의 대상이 아닌) 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열망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에 영화를 찍으면서 선배님들이나 스태프 형, 누나들이 한 명의 배우로 봐주니까 오히려 좋았어요.”

그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최대한 몰입해서 연기하는 최고의 작품을 하고 싶은 것이 배우로서 목표”라면서 “연기경력이 쌓여가면서 욕심도 그만큼 늘어날 텐데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질문마다 조심스럽게 생각한 뒤 진지하면서도 조리 있게 대답한다. 이미 의젓한 한 사람의 배우다.

그러더니 이내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꼭 연극영화과가 아닌, 연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일단 지금은 대학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 대학생이 되어 대학 캠퍼스를 걸어 보고 싶어요. 그런데 국어, 영어 등 언어영역은 그나마 자신있는데, 수리영역은 어휴….”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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