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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바다에 빠지다

‘뮤지컬의 디바’ 바다(35·본명 최성희)가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하 바람사)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지난 1월 초연에 이어 내년 1월 31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무대에 오르는 이번 재공연에서도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았다. “초연 때보다 더 숙성됐다고 할까요. 이제는 스칼렛이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 알 것 같아요. 제 안에 스칼렛의 ‘에고’가 형성돼 있는 듯해요. 무대에 서면 제 자신이 스칼렛이라고 느껴져요. 무대에 선 저를 보고 어느 누구도 당신이 왜 스칼렛이냐고 반문하지 않을 정도로 스칼렛이 됐어요.”

아이돌 1세대로 뮤지컬을 처음 시작한 바다는 “후배들이 제가 걸어온 길을 뒤따를 수 있도록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됐으면 한다”며 “길을 계속 개척해 후배들에게 길을 많이 열어주고 싶다”고 말했다.<br><br>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br>


뮤지컬 ‘바람사’는 미국 소설가 마거릿 미첼이 1936년 출간한 동명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로미오 앤 줄리엣’ ‘십계’ 등을 만든 프랑스 뮤지컬팀이 원작을 토대로 노예 해방, 자유, 인본주의 메시지를 담은 프랑스 뮤지컬로 제작했다. 2003년 프랑스 초연 때 9개월간 90여만명을 동원하며 흥행 신화를 썼다.

바다는 “‘바람사’ 초연 때 아쉬웠던 점은 없다”고 했다. “후회 없이 했어요. 저는 ‘오늘은 있다, 내일은 모른다’는 신념으로 살아요. 오늘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요. 제 공연을 보면 제가 최선을 다하는 데서 느껴지는 감동도 있을 거예요.” 실제 바다는 프랑스 오리지널 제작진으로부터 “스칼렛 그 자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는 스칼렛은 타고난 미인이 아니라고 했다. “스칼렛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해야 예뻐 보이는지를 아는 여자예요. 스칼렛을 연기하며 ‘온 동네 남자들이 어떻게 이 여자를 좋아할 수 있었을까’, ‘어떤 여자이기에 남자들이 이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려 할까’를 많이 생각했어요. 그녀의 매력은 자신감이었던 것 같아요.”

바다
바다는 2002년 걸그룹 S.E.S 해체 이후 뮤지컬계에 발을 내디뎠다. 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노래도 계속하고 싶어서다. 안양예고 시절 연극에 푹 빠졌다. 1학년 때부터 학교 공연에서 ‘산불’, ‘코카서스의 백묵원’ 등 국내외 유명 작품의 배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때 친구들이 붙여준 닉네임이 ‘바다’다. 장차 연극배우가 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무대에서 연기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편찮아지시면서 집안이 힘들어져 꿈을 접어야 했다. 대학 학비를 전액 지원받는 조건으로 SM과 가수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엔 가수들이 돈을 많이 벌었어요. 아버지께서 창을 하셔서 노래는 곧잘 했어요. 노래를 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컸어요. 가수 겸 영화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처럼 매력 넘치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SM과 계약 종료 후 연기와 노래, 두 개를 모두 살릴 수 있는 뮤지컬의 길을 걷게 됐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죽기 전에 연극이 됐든 뮤지컬이 됐든 최고의 연출가와 함께 꼭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2003년 첫 데뷔 작품으로 뮤지컬 ‘페퍼민트’를 택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잘나가던 아이돌 여가수가 해외 유명 작품이 아닌 국내 순수 창작물을 데뷔작으로 택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어요. 하지만 소신이 있었어요. 첫 작품은 무조건 창작물로 해야겠다는 믿음이었죠. 당시 뮤지컬 시장엔 아이돌도 없었고 지금과 달리 너무 척박했어요. 개척정신이 없으면 뮤지컬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어요. 프런티어 정신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더 큰 뮤지컬 배우로 커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첫 작품 이후 4년여간 뮤지컬 무대에서 바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가수 활동 등 여러 가지 일로 바쁘기도 했지만 둘도 없는 친구의 죽음에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제 주변인 중 가족 같은 사람이 죽은 게 처음이었어요. 2년간 외부 활동을 안 했어요. 외국에 봉사활동을 나가거나 하며 고통을 견뎌냈어요.”

아픔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바다의 행보는 파죽지세였다. 2007년 뮤지컬 ‘텔미 온 어 선데이’로 무대에 다시 선 이후 ‘노트르담 드 파리’, ‘미녀는 괴로워’, ‘브로드웨이 42번가’, ‘금발이 너무해’, ‘모차르트’, ‘스칼렛 핌퍼넬’, ‘카르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매년 뮤지컬 흥행 기록을 세워 오고 있다.

“‘텔미 온 어 선데이’는 제 인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작품이에요. 무대 등장과 동시에 48곡을 혼자서 다 부르는 ‘모노 뮤지컬’이었어요. 공연이 끝나야만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어요. 한국 공연 당시엔 한참이나 시대를 앞선 뮤지컬이었죠. 배우로서의 실력을 길러 줬어요. 그 뮤지컬을 하며 많이 성장했고 어떤 무대든 두려움이 없어졌죠. 기회가 되면 꼭 다시 하고 싶어요.”

2008년 말에서 2009년 초까지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에 출연했을 때가 연예계 인생 통틀어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뮤지컬 출연 횟수도 적지 않았고 방송활동 등 다른 스케줄도 많아 몸이 버티지를 못했다.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뒤 지쳐 쓰러진 적도 여러 번이었다. 영양주사를 맞으며 겨우 버텼다. “당시 저와의 싸움이었어요. 정신력으로 버티며 무대에 섰어요. 하루하루 힘든 공연을 하며 ‘성희야 너 살아 있어?’, ‘괜찮겠어?’라고 묻고 또 물었어요. 정말 처절했던 나날들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공연을 마치고 배우 대기실에 쓰러져 있을 때였다. 나이 지긋한 여성이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전갈이 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을 만나러 올 사람이 없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이상한 예감이 들어 만났다. “대기실로 들어오는 그분을 딱 봤는데 ‘아우라’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단아한 느낌의 그 귀부인이 말했어요. ‘오늘 공연 너무 잘 봤다. 난 판사인데 돈도 명예도 다 얻었다. 내 인생에서 더이상 바랄 것도 이룰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오늘 당신의 열정을 보고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난 당신 나이에 당신처럼 열정적으로 살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내게 이런 뉘우침을 준 사람은 인생 통틀어 당신뿐이다. 당신 덕분에 꺼져 가는 인생의 불꽃이 살아나게 됐다’고. 그때 배우로서 가장 큰 보람과 감동을 느꼈어요. 제 열정을 통해 새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분이 있다면 오늘 당장 쓰러져 죽는다 해도 삶의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 벅찼어요. 힘들 때마다 그분이 생각나요.”

바다는 내년엔 더 바쁠 것 같다고 했다. “차기 뮤지컬 작품으로 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 작품을 하게 된다면 내년에도 뮤지컬을 하게 될 거고 그러지 않으면 음반을 내고 중국 활동에 주력하려 해요. 음반을 오랫동안 내지 못했어요. 10개월 전에 음반을 내려 했는데 그때 ‘바람사’ 제의가 들어와 못 냈어요. 그 이후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고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고요. 고교 시절 푹 빠졌던 연극도 다시 해보고 싶어 좋은 작품을 생각해 보고 있어요.”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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