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고티에 전’은 캐나다 몬트리올 미술관과 프랑스 장 폴 고티에 하우스가 2년간 협업해 준비한 전시로, 지난 5년간 8개국 11개 도시를 순회해 누적 관람객 220만명 이상을 기록했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서울디자인재단과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투어의 마지막 전시가 된다.
장 폴 고티에는 25일 DDP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에너지로 가득 찬 나라”라며 “프랑스 사람들에게 한국에 꼭 와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마네킹에 전시된 의상 140점, 사진 등 평면작품 72점, 오브제 8점으로 구성돼 있다. 또 장 폴 고티에가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영감을 받았던 주제를 중심으로 7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이 중 마네킹 2개는 빅뱅의 지드래곤과 투애니원의 씨엘의 모습을 본떠 만든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장 폴 고티에는 “한국 아티스트와 협업을 한다면 아이돌 걸그룹이나 보이그룹과 하고 싶다”며 “한국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아주 신선하다. 한국에 와서 아이돌 콘서트를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한류가 세계를 휩쓸면서 한국의 스타일이 많이 알려졌다”며 “한국 패션은 위트 있으면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전 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문화적 장벽을 넘나든다”고 설명했다.
장 폴 고티에가 직접 디자인한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 의상 45점을 만날 수 있는 패션쇼도 전시와 함께 열린다. 전시와 패션쇼가 동시에 열리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그는 한국을 주제로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를 패션쇼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전시와 함께 패션쇼를 진행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며 “전통적인 한국 의상을 고티에식으로 재해석하려고 노력했다.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었다”고 강조했다.
장 폴 고티에는 남성용 스커트와 남녀 구분이 없는 ‘앤드로지너스 룩’(androgynous look) 등으로 패션 속에 정형화된 성(性)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한 디자이너다. 그는 비닐·주방기구 등을 활용하고, 다양한 체형의 모델과 백발의 노인을 런웨이에 세우는 등 패션의 소재와 모델 등에서도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특히 1990년 팝 가수 마돈나가 월드투어 의상으로 선보인 ‘원뿔형 브라’(Con Bra)는 장 폴 고티에 패션을 대표하는 상징처럼 여겨진다.
장 폴 고티에는 미용사로 일했던 외할머니로부터 모든 영감을 받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할머니는 손님들에게 남편이 바람 피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화장하고, 옷을 입어야 하는지 조언하셨어요. 전 그런 모습을 항상 옆에서 지켜봤죠. 그리고 제가 상상하는 패션을 늘 그림으로 남겼어요. 당시 저는 인형을 가지고 싶었는데 남자라서 그러지 못했죠. 그래서 제가 ‘나나’라고 이름 붙인 곰 인형에 원뿔형 브라를 처음 만들어 입혀봤지요. 그 곰 인형은 저만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친구입니다.”
그는 축구를 못해 또래 아이들에게 ‘왕따’ 당했던 경험을 말하며 자신의 그림과 디자인으로 따돌림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반짝이 의상과 망사 스타킹을 신고 춤을 추는 여자를 상상하며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그걸 아시고 그림을 제 등 뒤에 붙이시더니 학교를 돌아다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저에게 수치심을 주려고 하신 거죠. 재밌게도 그림을 보고 친구들이 저에게 다가오더라고요. 자기도 그려달라고요. 그때 그림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장 폴 고티에는 고양이용 통조림 모양을 보고 팔찌를 디자인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원래 용도가 아닌 것으로 바라볼 때 사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들과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자신감 있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번 전시가 현재 진행 중인 패션을 보여주는 생동감 넘치는 전시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면서 한국 패션계에도 조언을 남겼다.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삶을 모방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해요. 나라도 마찬가지죠. 모든 나라는 각각의 매력과 미가 있어요. 전통을 살리되 새로운 것도 창출해야 하죠. 과거, 현재, 미래를 적절히 섞는 것이 중요해요.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껴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