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은 덕혜옹주(손예진)를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 ‘김장한’을 연기한다. 원래 김장한은 실제 기록에선 고종이 환갑에 얻은 딸로 애지중지하던 덕혜옹주와 정혼시키려 했던 것으로 단 한 줄 언급되는 인물이다. 덕혜옹주는 그러나 고종이 돌연 세상을 떠나며 일제와 친일파에 의해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해방 이후에도 이승만 정부의 반대에 막혀 좀처럼 고국 땅을 밟지 못하던 덕혜옹주는 1962년 일본에서 영구 귀국한다. 이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게 서울신문사 김을한 기자로, 김장한의 형이다. 영화 속 ‘김장한’은 이들 형제를 하나로 녹인 캐릭터다. 여기에 허진호 감독은 김장한이 젊은 시절 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영친왕과 덕혜옹주 남매를 상해로 망명시키려고 일본에서 탈출 작전을 벌였다는 픽션까지 버무리며 자칫 분위기가 처질 수 있는 영화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영화에서 덕혜옹주와 김장한은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로 미묘한 감정선을 오간다. 박해일은 감정신이 단 한 장면에 불과할 정도로 절제된 연기를 보탠다. 덕혜옹주에 대한 김장한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그 부분이 이번 작품에서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다고 박해일은 말했다. “적정하게 거리를 두고 남녀 관계를 풀어가는 허진호 감독님만의 특화된 방식이 무척 매력적이에요. 감독님은 사소한 동작이나 모습에서 인물과 인물 사이의 정서를 끄집어 내는 데, 정말 대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슬아슬하게 관계의 지점들을 풀어내는 데 거기서 깊이가 나오죠.”
덕혜옹주가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이었느냐에 대해 어느 정도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 영화는 애써 미화하려 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과 극화된 영화는 비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다양한 장르로 풀어왔고, ‘덕혜옹주’도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더 나아가 이야기하려는 게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좋은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