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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없는 K팝 그룹…미국 뉴욕서 결성해 꿈 찾아 한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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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온 아이돌 ’이엑스피 에디션’
뉴요커 케이팝 그룹 ’이엑스피 에디션’
미국에서 온 아이돌 ’이엑스피 에디션’
’이엑스피 에디션’ 입니다
네 명의 외국인(시메, 코키, 프랭키, 헌터)으로 구성된 보이그룹 이엑스피에디션(EXP EDITION)은 지난달 말 덴마크에서 열린 ‘로스킬드 뮤직 페스티벌’에 K팝 가수로 초대됐다.



페스티벌 기간 중 4일간 45분씩 공연한 이들은 올해 4월 발표한 데뷔 싱글 ‘필 라이크 디스’(FEEL LIKE THIS)를 비롯해 슈퍼주니어, 빅뱅, 자이언티 노래와 트로트곡인 박현빈의 ‘샤방샤방’까지 선보였다.

덴마크에서 막 돌아온 멤버들을 최근 종로구 수송동에서 만났다.

“안녕하세요. 이엑스피에디션입니다.”

훤칠한 외모의 멤버들이 몸에 익은 듯 단체로 외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영락없는 K팝 그룹의 인사법이다.

페스티벌의 반응을 묻자 멤버들은 앞다퉈 말하며 적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다.

“호응이 대단했어요. 덴마크에서는 K팝을 보기 힘들어서 감동적이라며 우는 팬도 있었죠. ‘샤방샤방’ 무대도 정말 좋아했어요. DR 방송 등 덴마크 유명 매체들과 인터뷰했는데 무척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멤버들)

아직은 어설픈 한국어로 얘기하는 이엑스피에디션은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나 고교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시메, 홍콩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코키, 포르투갈 출신으로 미국에서 태어난 프랭키, 미국 출신인 헌터로 구성됐다. 다시 말해 한국인이 없는 K팝 그룹이다.

각기 다른 일을 하며 뉴욕에 머물던 이들이 운명적으로 만난 것은 지금의 기획사 아임어비비 대표인 김보라 씨의 논문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뉴욕 컬럼비아대학원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김씨는 2014년 친구들과 함께 ‘한류와 K팝에서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란 화두로 논문을 준비하면서 ‘아임어비비’(IMMABB·I‘m Making A Boy Band)란 제목으로 보이그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함께 자리한 김 대표는 “아이돌 가수가 돼 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찍는다는 오디션을 공지하자 2천 명이 참가했다”며 “열린 사고에 인간적인 매력이 있고 표현력이 좋은 멤버를 뽑았다”고 설명했다.

축구 선수 출신인 프랭키는 배우와 댄서, 헌터는 배우, 코키는 광고 모델로 뉴욕에서 활동 중이었다. 시메는 10살 때 크로아티아 경연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해 석장의 앨범을 낸 가수 출신으로 애리조나주립대학교에서 뮤지컬을 전공했다.

“뉴욕은 경쟁이 치열한 곳이죠. 출중한 재능과 연륜 있는 사람들이 많아 오디션을 볼 때면 주눅이 들 때가 있어요. 이 오디션에 갔을 때도 시메가 가죽 재킷을 입고서 말도 안 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친구인 줄 알았죠. 하하하.”(헌터, 프랭키)

공통분모는 K팝의 매력을 느끼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는 것.

시메는 “K팝은 새롭고 신나는 장르”라며 “한국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세계인들이 강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재즈가 뉴올리언스에서 처음엔 작게 시작했지만 이젠 세계인이 즐기듯이 이미 많은 사람이 K팝을 향유하고 싶어 하고 K팝 가수를 꿈꾸기도 한다. 어린 시절 다른 음악을 했지만 도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프랭키와 헌터도 “K팝은 단순히 음악과 퍼포먼스가 아니라 팬덤 문화가 있고 예능이나 음악 방송과도 연계된 특별한 종합 장르였다”며 “미국 보이그룹은 노래가 좋거나 춤이 멋있는 스타일이 각각 있는데 K팝 그룹은 엔터테이너로서 필요한 모든 요소가 다 있어서 흥분됐다”고 말을 보탰다.

2015년 미국에서 싱글 ’러브/롱‘(Luv/Wrong)을 내고 컬럼비아대학원 졸업 전시에서 쇼케이스를 연 이들은 김 대표에게 “K팝을 하려면 한국에서 살면서 데뷔하고 싶다”고 서울행을 제안했다.

이때부터 생소한 한국 적응기가 시작됐다. 한국의 연습생 트레이닝 시스템을 경험하고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숙소생활을 시작했다. 해외에는 없는 가수 육성 시스템이 이해됐는지 묻자 “독특했지만 금방 적응됐다”고 웃었다.

프랭키는 “한국에서는 보컬과 댄스뿐 아니라 언어와 연기, 카메라 워킹까지 가르쳐준다”며 “미국에서는 종합적으로 가르쳐주는 시스템이 없어서 독특했다”고 말했다.

시메도 “처음에는 숙소생활이 조금 힘들었지만 이젠 가족 같아서 함께 있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덴마크에 가기 전 미국에 들렀는데 한국이 그립고 집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멤버도 있었다.

그러나 부족한 한국어 실력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올봄 낸 ’필 라이크 디스‘도 그저 외국인이 어색한 발음으로 부르는 한국어 노래로 들렸다. 뭔가 어설퍼 보이는 모습 탓에 악성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를 극복하고자 멤버들은 유튜브에 ’어떻게 외워요?‘란 제목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영상을 꾸준히 올리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

코키는 “’필 라이크 디스‘를 녹음할 때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한층 자연스러워졌다”며 “우린 계속 향상되고 있고 곧 선보일 새 음반에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자 김 대표는 “아이돌 비즈니스를 위해 완벽한 그룹을 내놓으려는 취지가 아니었다”며 “이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타지에서 멤버들과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일상이지만 외로움도 느낄 법하다.

프랭키는 최근 방송된 KBS 1TV ’이웃집 찰스‘에서 세상을 떠난 형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형을 매일 생각해요. 형이 떠나기 전에는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투병하면서도 마지막 날까지 나을 거라고 믿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을 보는 틀을 바꿨어요. 원하는 것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고요. 제가 이엑스피에디션으로 데뷔하기 전에 형이 떠났는데 저를 K팝의 길로 이끌어준 것 같아요.”(프랭키)

어린 시절 다리가 좋지 않았던 시메도 “과거 2년간 걷기 힘들어 목발을 짚고 다녔다”며 “가끔 연습할 때 아프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웃어 보였다.

용기 있는 도전을 한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감사해 하며 세계에 K팝을 알리는 전도사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코키는 “다른 나라에서 연습하고 공연하고 언어를 배우는 놀라운 경험을 하는 것은 행운”이라며 “우리가 완전 사랑하는 K팝의 매력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시메도 “우리가 특이한 위치에 있지만 K팝을 세계에 소개하고 싶다”며 “오늘 한 크로아티아 팬이 보낸 장문의 편지를 받았는데 K팝에 관심을 갖고 우리를 사랑해줘 고마웠다.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언젠가 한국에 와 공연장 맨 앞자리에서 응원하는 날을 기다린다는 말에 울고 말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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