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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도 보통 변신이 아니다. 망가지기로 작정을 한듯, 물불 안 가리고 화면 속에서 뛰어다닌다.
꽃분장으로 주름을 가리고, 예쁜 옷으로 나이를 지우려는 게 아니라 정반대의 모습을 통해 스타가 아닌, 여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둘은 나란히 10대에 사고 치고 엄마가 된 캐릭터를 맡아 체면과 품위를 벗어던졌다.
◇ 마스카라 번져도, 아무 옷이나 입어도 OK
채시라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여고시절 담임교사한테 찍혀 구박과 학대를 당하다 결국 퇴학당하고 19세에 덜컥 아이를 낳은 사고뭉치 김현숙을 연기한다.
그렇게 낳은 딸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최연소 대학교수를 노리고 있는 마당에도 40대의 김현숙은 여전히 철이 들지 않았다. 사기를 당해 친정집 전재산을 날리더니 만회하겠다고 불법도박장을 기웃거리다 단속에 걸려 마스카라가 다 번진 채 슬리퍼 바람으로 도망다니기도 했다.
반듯한 모범생 혹은 야망에 불타는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해온 채시라가 이번에는 한살 위 잘난 언니한테 평생 치여 사는 못난이를 맡아 이제껏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철 들려면 먼 것 같은 언사, 매사 자신감 없고 주눅이 든 행동거지의 김현숙을 만나 ‘대차게’ 망가진다.
김희선은 ‘앵그리맘’에서 18살 딸을 둔 34살 엄마 조강자를 연기한다.
조강자는 김현숙보다 한술 더 떠 학창시절 ‘껌 좀 씹었던’ 인물이다. 주먹깨나 써서 ‘벌구포 사시미’라는 별명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과거를 뒤로 하고 불광동에서 돼지불백 전문기사식당을 운영하는 뽀글머리 억척주부로 살아간다. 욱하는 성질에 손님들에게도 욕설을 퍼붓고는 하지만 조강자는 지금은 칼질 잘하고 힘 좀 쓰는 짠순이 식당 주인으로 살고 있다.
어떻게 해도 미모를 숨길 수 없어 늘 예쁜 공주같은 역할을 해온 김희선이 대충 집에 남아도는 옷을 걸쳐입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온갖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아줌마로 변신한 모습은 그 자체로 볼거리다.
◇ 무릎도 꿇고 주먹도 휘두르고
채시라의 김현숙과 김희선의 조강자 모두 어릴 적 사고를 쳐 일찍 엄마가 된 까닭에 ‘엄마’로 보이지 않는다. 김현숙은 딸의 언니로 오인받고, 조강자는 심지어 여고생으로 오인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둘다 그동안 지나온 세월만큼의 어두운 ‘흑역사’가 있고, 그로 인해 키운 강단이 있다. 그리고 딸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엄마다.
여고시절 악덕 교사의 학대로 고통을 겪은 김현숙은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평소에는 아이처럼 떼도 쓰고 철부지 짓도 많이 하지만, 학교 폭력은 용서할 수 없는 그는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을 구해주기 위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기도 한다.
김현숙은 또한 딸을 위해서는 무릎도 꿇는다. 대학교수가 되려는 딸의 앞길이 막힐 것 같자 주저없이 학교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한다. 딸은 질색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렇다.
조강자는 학창시절 불의를 보면 참지못했던 정의의 ‘주먹파’였다. 하지만 과거를 잊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는 어느날 자신의 딸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눈이 뒤집힌다.
그는 조방울이라는 이름의 여고생으로 딸의 학교에 위장 잠입해 딸 대신 복수에 나선다. 역시 엄마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직전 단계로 조강자는 ‘밤의 세계’로 들어가 잊고 살려고 했던 자신의 주먹 실력을 꺼내보인다. 딸은 창피하다며 밖에서 자신을 엄마라고도 부르지 않지만 조강자는 학교에서 당하고 사는 딸을 위해 어떤 짓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그리고 학교에 위장잠입해서는 다시 정의의 주먹을 휘두른다.
이러한 채시라와 김희선의 열연에 화장 고칠 시간은 끼어들 새가 없다. 어떻게 하면 좀더 캐릭터의 진심이 전해질까 하는 고민만 빛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