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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있으나 섹시하지 않아… 그대 뇌의 성감대를 자극하리

■기사에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님포매니악’(nymphomaniac)은 여자 색정광(色情狂)을 뜻하는 단어다. 얼핏 섹스 중독자의 고급스러운 표현 같지만, 님포매니악은 섹스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조돼 있다는 점에서 결핍이나 욕구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섹스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중독자들과 구분된다. 그래 봤자 누군가에게는 똑같이 남사스러운 욕정일 뿐이므로 이 영화는 제목부터 상당한 파격을 예고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남녀의 전라(全裸)는 물론이고 각양각색의 섹스까지 가감 없이 보여 주니 과연 ‘섹스 버스터’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다.

그런데 ‘님포매니악’에서 에로 영화의 관습과 매력을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여주인공들은 나무토막처럼 말랐고, 대부분의 섹스는 차갑고 건조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섹스는 있지만 ‘섹시’하지는 않고, 에로스는 있지만 ‘에로틱’하지 않은 이지적(理智的) 영화야말로 ‘도그빌’과 ‘멜랑콜리아’를 만들었던 얄밉도록 천재적인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다. 이런 영화를 무슨 재미로 보냐고? 모르시는 말씀! 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미치도록 흥분되고 짜릿하다. 잡다한 상식은 물론이고 수학, 문학, 음악, 종교, 영화를 넘나들며 지적 유희를 즐기는 인물들의 대화는 간만에 당신의 뇌에 달린 성감대를 제대로 자극할 것이다.

‘님포매니악 vol.1’은 골목에 쓰러져 있던 ‘조’가 한 중년 남자(샐리그먼)에게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축을 받아 샐리그먼의 집에 들어간 조는 밤새 그에게 자신의 과거를 들려준다. 그리고 숫총각 샐리그먼은 가톨릭 신부처럼 고해성사와도 같은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님포매니악을 자처하는 조는 수많은 남성들과 주도적이고 자발적인 성관계를 맺으며 성장한다. 그러다 여느 여성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시기에 조는 불감증에 걸리고 만다.

‘님포매니악 vol.2’는 다시 색정광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조의-문자 그대로-‘피눈물 나는’ 노력에 관한 이야기다. 가학성을 통한 오르가즘, 감각을 되찾기 위해 아이를 떠나는 엄마의 비정함 등 vol.2에는 전편보다 훨씬 세고 불편한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그럴수록 섹스라는 소재의 은유적 성격 또한 확실히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섹스 그 자체라기보다 한 개인의 타고난 본능과 욕정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결말부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샐리그먼의 대사를 통해 사회적 금기와 윤리를 보란 듯이 비웃으며 꿋꿋이 생겨 먹은 대로 살아온 조의 용기를 칭찬한다. 조가 긴 회상 가운데 한층 견고해진 현재의 자신을 느끼며 새로운 생의 의지를 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vol.1을 포함해 장장 4시간에 달하는 ‘님포매니악’ 시리즈의 백미는 단연코 마지막 3분이다. 영화 내내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구축해 왔던 캐릭터를 한순간에 스스로 허물어 버리는 감독의 냉소는 몸서리쳐질 만큼 싸늘하다.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핍진성 때문에 그렇게 세련되고 깔끔할 수가 없다. 모든 면에서 새롭고 매혹적이고 미학적인 작품이다. 3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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