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우리 잘 싸웠지?…지금, 여기 문제에 맞선 프랑스판 ‘미생’ ‘카트’

홍상수 감독이 ‘카트’ 혹은 ‘미생’을 만들었다면 이런 식이었을까. 영웅적이고 장렬한 투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극적인 서사를 담지도 않았다. 그저 한 해고 노동자가 주말 이틀의 시간 동안 옛 동료들을 만나면서 각자의 처지와 삶을 곡진히 풀어냈을 뿐이다. 핵심은 노동에 대한, 삶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었다. 영화는 순간순간 겪어야 하는 동료들과의 갈등과 스스로 갖는 회의, 각각 겪고 있는 짧지만 신산한 일상을 덤덤히 담아냈다.

그러나 그 문제의식은 만만치 않다. 해고의 책임과 결정을 동료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계약직과 정규직의 분열을 꾀하는 자본의 모습, 노동자 연대의 지난함, 일자리 나눔(잡 셰어링)의 당위성, 대출 이자와 주거난에 시달리는 워킹푸어의 모습, 이주노동자 문제까지 신자유주의의 민낯을 영화 속에 촘촘히 집어넣었다. 일상의 세심한 결을 따라가는 형식은 홍상수 감독의 느낌이지만, ‘지금, 여기’의 문제를 비켜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영화의 시선과 문제의식은 더없이 당당하기만 하다.

다르덴 형제 감독이 공동으로 시나리오, 연출, 제작을 맡은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의 원제목은 ‘투 데이즈, 원 나이트’다. 병가를 낸 뒤 복직을 앞뒀지만 동료들의 투표로 복직이 무산될 위기에 놓인 산드라(마리옹 코티아르)가 동료들을 찾아다니는 시간의 얘기다. 1000유로(약 135만원)의 보너스와 산드라의 복직을 놓고 선택하라는 회사의 투표에서 16명 중 14명의 동료들은 ‘1년치 가스와 전기세’인 보너스를 선택했다.

산드라의 남편은 복직을 포기할까 망설이는 아내에게 “당신 월급 없으면 대출은 어떻게 갚느냐, 다시 임대주택으로 돌아가야 하느냐”고 동료들의 설득을 포기하지 말라고 곁에서 채근한다. 남편 역시 동네식당 요리사로 일하는 박봉의 처지라 현실에 쫓기는 절박함이 크다. 일견 얄밉거나 무능해 보이기도 하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까지 시도하는 산드라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후원자임에 분명하다.

산드라의 회사는 대표적인 21세기 신재생 에너지인 태양열판을 만드는 곳이다. 고용정책 역시 21세기 신자유주의 흐름을 고스란히 좇는다. 사장은 재투표 결과, 8대8로 안타깝게 복직이 좌절된 산드라에게 선심을 쓰듯 복직을 약속한다. 조건은 두 달 뒤 계약 기간이 끝나는 비정규직 대신 복직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산드라의 대답은 명확하다. 비루해 보이는 삶이지만 세상의 존중은 노동자 스스로 얻어냄을 재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당당한 걸음으로 회사를 나오면서 산드라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활짝 웃으며 말한다. “우리 잘 싸웠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그 흔한 음악 한 소절 없이 일상 속 소소한 소음들만 이어진다.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새달 1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인기기사
인기 클릭
Weekly Best
베스트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