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에피소드 속 한판 대결

분노를 되도록 표출하지 않는 것을 성숙함의 요건이라 배워왔던 우리지만, 도저히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운 순간에 직면할 때가 있다. ‘와일드테일즈-참을 수 없는 순간’은 분노를 유발하는 자들에 맞서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혹은 통제하기를 포기한 이들의 한판 대결을 6개의 에피소드로 풀어낸 작품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현실적 상황과 기발한 상상력을 적절히 조화시켜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낸다.

프롤로그라고 할 수 있는 첫 번째 에피소드는 대부분 비행기 안에서 벌어진다. 승객들은 대화 중에 그들이 공통적으로 한 사람을 알고 있으며, 모두 그와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불러 모은 당사자는 조종실에 들어가 난폭하게 비행기를 몰기 시작한다. 사이코나 루저가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처벌하는 것은 호러 영화의 관습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유머와 곁들여 짧게 상황만 제시함으로써 경쾌하고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완성되었다.

이후 식당 종업원이 아버지의 원수를 손님으로 받게 되는 에피소드, 한적한 도로에서 추월을 방해하는 짜증나는 운전자를 만나 벌어지는 사건, 불법주차 표시가 없는데도 번번이 차를 견인당해 화가 난 시민, 아들의 뺑소니 사고를 덮기 위해 돈 많은 아버지가 정원사 및 경찰과 벌이는 협상, 결혼식 날 신랑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부의 복수 등을 차례로 보여준다. 각 에피소드는 현실에서 한 번쯤은 당해봤음직한 ‘참을 수 없는 순간’에 대한 상황극이다. 몰입감을 주면서도, 실제 상황이라면 거의 실행 불가능한 대응 방식으로 대리만족과 쾌감을 선사한다.

흥미로운 것은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는 쪽과 그에 분노를 폭발하는 쪽이 거의 대등해지는 지점이다. 가령 세 번째 에피소드는 고물차가 고급차의 추월을 방해하는 작은 장난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갈수록 서로에 대한 분노의 수치는 높아지고 극단적인 폭력으로 번져 나간다. 끈질기게 서로 물고 늘어지는 가운데 누가 최초의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는 불분명해진다. 한바탕 소란 끝에 나란히 있게 된 두 사람의 마지막 이미지는 이러한 주제를 잘 드러내준다.

각 에피소드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또 한 가지 사실은 최초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대부분 사회적 신분의 지위 고하로 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식당의 종업원과 손님, 고급차의 주인과 고물차의 주인, 관공서와 시민, 부자와 정원사 등은 아예 갑과 을의 관계이거나 적어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다른 계층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현재 우리 사회가 배태하고 있는 계급갈등의 긴장과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된 다이나마이트처럼, 언제 폭발할지 모를 만큼 만연한 사회적 분노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묵인할 수 있을 것인가. 유쾌함으로 포장된, 진중한 메시지가 영화에 아우라를 더한다. 21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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