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꿈에 그리던 뉴욕 발령을 눈앞에 둔 연우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교통사고를 당해 이승과 저승의 문턱에 서게 된 것. 하지만 한 달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면 원래의 삶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 제안을 덜컥 받아든 연우에게 상상하지도 못했던 아줌마 라이프가 펼쳐진다. 때 되면 밥 달라, 돈 달라 외쳐대는 아이들도 적응이 안 되는데 동네 아줌마들과의 수다 모임에도 껴야 하고, 35원짜리 봉투를 붙이는 부업까지 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생소한 것은 바로 남편이 생겼다는 점이다. 성환(송승헌)은 가진 것은 없지만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만큼은 넘치는 구청 공무원이다. 연우는 쓸데없이 얼굴만 잘생긴 성환이 영 불만이다. 하지만 성환은 달라진 아내를 구박하기보다는 혹시 자신에게서 마음이 떠난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는 애처가다.
한 달간의 시한부이기 때문에 버텨 보기로 작정한 연우. 하지만 그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가족들의 정에 물든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편이 돼 주는 남편, 달라진 엄마가 갱년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살뜰하게 챙겨주는 아들, 사춘기이지만 모녀의 끈끈한 정을 나누는 딸은 어느새 그녀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돼 있었다.
재벌의 입장에서 변호를 했던 연우는 엄마가 되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과 가치관이 달라진다. 평범한 동네 아줌마인 연우가 변호사로서의 능력을 활용해 동네 부녀 회장의 비리를 조목조목 짚는 장면과 성폭력을 자행한 재벌 아들에게 경고를 하는 장면은 통쾌함을 안겨 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가족 드라마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조로 흐르는 건 아쉽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따뜻함이라는 일관된 주제는 잘 살았다. 일견 뻔한 판타지 영화로 흐를 뻔한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도도한 골드미스 연기로는 대체 불가인 엄정화가 극의 중심을 잡고 송승헌은 힘을 뺀 생활 연기로 빈틈을 잘 메웠다. 또한 맛깔나는 조연 연기의 달인 라미란과 김상호, 아역 배우 서신애와 정지훈은 영화를 탄탄히 받치는 힘이다. 영화 ‘조폭 마누라’의 각본을 쓰고 ‘육혈포 강도단’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던 강효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13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