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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마음먹은 남자… ‘살자’ 달라지게 만든… 바로 옆 이웃 사람들

한국은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복지국가를 동경한다. 각종 통계 지표에서 드러나듯 이들 나라는 삶의 만족도가 높다. 게다가 국가 경쟁력도 상위권에 자리한다. 반면 한국은 둘 다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이 전자와 후자의 두 마리 토끼(실은 나누어지지 않는 한 마리 토끼다)를 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현대 스웨덴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그날을 영위하기 위해 참고가 될 만하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프레드릭 배크만이 쓴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배크만은 2012년에 처음 쓴 장편으로 자국 스웨덴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세계 30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소설의 명성에 힘입어 영화도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네스 홀름 감독은 소설의 중심 서사를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겨 놓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오베는 직장에서 은퇴한 59세 남자다. 그는 매일 아침 5시 45분에 일어난다. 간밤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동네를 순찰하기 위해서다. 오베는 지나칠 정도로 원리원칙을 고수한다. 규율 위반만큼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없다. 한편 오베는 차근차근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 반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 소냐의 빈자리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침내 오베가 하늘에 있는 아내 곁으로 가려고 하는 순간, 새로 이사를 온 파르바네 가족이 그의 집 문을 두드린다. 그 뒤에도 본의 아니게 그들과 자꾸 마주치게 되면서, 틀에 얽매인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던 오베의 삶도 변하기 시작한다.

파르바네는 이란 출신 이민자로, 남편 패트릭과 결혼해 오베가 사는 마을로 이사 온 인물이다. 그녀와 엮이면서 오베는 혼자였다면 인연을 맺지 않았을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차츰 그는 동네 질서 유지보다 이웃 고민 해결에 앞장선다. 동일성의 화신 오베는 이질성의 표상인 파르바네와 사사건건 맞부딪치며, 자신이 용납하지 못하던 것을 조금씩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결국에는 그토록 싫어한 ‘고양이, 과체중 알레르기 환자, 동성애자’와 함께 아침 시찰에 나서는 기묘한 장면까지 펼쳐진다. 오베는 서툴게 일하는 이웃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외면하는 대신 얼굴을 찌푸릴지언정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들을 돕기 시작한다.

소냐를 따라 죽으려고 했던 오베의 자살 기도는 이제 기약 없이 점점 미뤄진다. 그가 불편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도리어 오베의 삶을 잇도록 하는 동력이 된다. 비록 웃는 낯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파르바네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사람들을 향해 기꺼이 손을 뻗는다. 오베의 변모는 그가 원래 좋은 사람이었다는 식의 언설로는 납득되지 않기에 곰곰 생각해볼 만한 의의를 갖는다. 자폐의 문을 여는 힘은 외부로부터 격발된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불가사의한 존재와 대면하는 의외의 사건을 회피하지 않을 때, 요지부동한 ‘나’의 세계에 비로소 다른 사람이 발들일 공간이 생겨난다. 고갱이는 타자와의 조우-환대이다. 오는 26일 개봉. 12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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