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단계다. ‘죄는 부조리를 낳는다. 부조리는 체제와 윤리를 마비시킨다. 마비된 체제와 윤리가 공동체를 깨뜨린다.’ 한데 가버나움 주민들은 회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회개도 뭘 잘못했는지 알아야 한다. 죄를 지었음에도 그것이 자신에게 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회개할 수 없다. 타락이 별 게 아니다. 잘못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이 우리를, 우리가 사는 세계를 계속 나쁘게 만든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나딘 라바키 감독은 레바논 빈민가가 배경인 이 영화의 제목을 ‘가버나움’이라고 붙였을 테다.
주인공은 열두 살 정도로 추정되는 소년 자인이다. 그의 나이를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출생신고가 안 된 탓이다. “우린 그냥 벌레야. 서류 없는 삶을 인정하고 살든지, 창밖으로 뛰어내리든지 둘 중 하나야.” 자기 신분을 증명할 만한 서류를 달라는 자인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다. 양육 능력이 없음에도 아이들을 줄곧 낳기만 하는 부모. 그래서 자식에게 정규 교육 대신 험한 일을 시키는 부모. 열한 살 딸을 동네 청년에게 신부로 팔아버린 부모. 그런데도 왜 죽을 힘을 다해 사는 우리를 비난하느냐고 항변하는 부모.
이들이 바로 회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못하는 가버나움의 주민이다. 그들 말고 또 있다. 난민을 불법 체류자로 유린하는 자들이 그렇다. 잘못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이 여기에 득시글댄다. 그러나 레바논 빈민가만 가버나움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 어쩐지 그런 마음이 든다. 잘못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은 한국에도 만연해서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 정작 회개하는 사람은 드물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