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자료 이미지. 서울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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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고 문을 열어주지 않자 화가 난 50대 남성이 우유 투입구에 불을 붙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이 남성의 현주건조물방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59)씨는 지난해 10월 16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시고 귀가한 A씨의 가정폭력을 걱정한 아내 B씨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가 난 A씨는 소리를 지르며 심한 욕설을 하다가 현관문 하단에 설치된 우유 투입구 문을 열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로 인해 현관문 내부가 그을렸고, 그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불을 붙인 이유에 대해 “현관문을 열도록 B씨에게 겁을 주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A씨의 휴대전화에는 불을 붙이기 전후에 아내에게 문을 열라고 요구한 기록이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아내 B씨 역시 검찰에서 “남편이 이전에 집에 불을 지르거나 지른다고 한 적은 없고, 제가 집에 있으니 바로 불을 끌 것으로 생각하고 겁을 주기 위해 불을 붙인 것 같다”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 조승우)는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지난달 23일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에게 미필적으로나마 아파트 건물 자체에 불이 붙을 가능성까지 인식 또는 용인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불을 붙인 당시 집에는 아내뿐만 아니라 딸도 거주하고 있었고, 바로 앞집에는 나이 든 어머니가 거주하고 있었다”면서 “피고인이 불을 질러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릴 의도가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이 일으킨 불은 화력이 약해 건물 내부 화재방지 센서 등이 작동할 정도의 연기까진 나지 않았고, 아내가 페트병에 담겨있던 물을 부어 쉽게 끌 수 있었다”면서 “화재 피해 역시 설치된 현관문 내부 중 우유 투입구 등이 다소 그을리는 정도에 그쳤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불이 꺼졌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불을 붙이려는 추가적인 시도를 하지 않은 채 아파트 계단에 앉아 있다가 현행범 체포됐다”면서 불을 붙이기 위해 일회용 라이터만 사용했을 뿐 다른 인화성 물질을 사용하지 않은 점도 방화의 미필적 고의가 없었다고 볼 만한 근거로 판단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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