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문화 기술(CT)로 만든 토종 K팝 그룹들의 해외시장 가능성과 싸이의 ‘강남스타일’ 충격파를 목격한 음반기획사들이 글로벌한 네트워크를 접목해 세계화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
최근 소녀시대, 브라운아이드걸스 제아의 음반에는 해외 유명 작곡가와 팝스타가 곡 작업에 참여했다.
또 빅뱅과 투애니원의 월드투어에는 유명 팝스타들의 공연을 연출한 감독들이 동원됐고 몇몇 가수들의 안무, 의상 등에는 해외 스태프의 손길이 파고들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해외 인력의 참여는 일부 대형 기획사 가수들을 중심으로 간간이 있었지만 요즘처럼 줄을 잇는 건 K팝이 몇년 새 경쟁력을 갖췄다는 방증.
업계는 세계 시장에 한층 빠른 속도로 진입하려는 K팝 가수들의 ‘니즈(Needs)’와 아시아권을 잠재력 있는 시장으로 여기는 서구 음악계의 ‘니즈’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음반.공연.안무.스타일링, 글로벌 일색 = 소녀시대의 4집은 SM엔터테인먼트가 수년간 쌓아온 글로벌 네트워크의 집합체다.
앨범에는 북유럽 작곡팀 ‘디자인 뮤직’이 참여한 ‘아이 갓 어 보이’를 비롯해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픽시 로트가 작곡한 ‘베이비 메이비(Baby Maybe)’, 영국 작곡가 조 벨마티가 만든 ‘프라미스(Promise)’, 팝스타 더피의 ‘머시(Mercy)’를 리메이크한 ‘댄싱 퀸(Dancing Queen)’ 등이 수록됐다.
또 브라운아이드걸스 제아의 첫 솔로 음반 ‘저스트(Just) 제아’에는 미국 알앤비(R&B) 가수 에릭 베넷이 참여했다. 에릭 베넷은 수록곡 ‘데이즈&나이츠(Days&Nights)’를 작사, 작곡하고 제아와 듀엣했다.
앞서 빅뱅 지디&탑의 음반에선 미국 유명 DJ인 디플로가 ‘뻑이가요’를 지드래곤과 공동 작곡했고 지드래곤의 솔로 음반에선 미국 힙합스타 플로 라이다가 ‘하트브레이커(Heartbreaker)’의 랩에 참여했다. 또 JYJ의 월드와이드 음반에는 미국 유명 래퍼인 카니예 웨스트가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투애니원은 블랙아이드피스의 윌아이엠과 손잡고 미국 음반을 준비하기도 했다.
월드투어를 펼치는 K팝 스타들의 공연에도 현지 인프라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빅뱅이 지난해부터 펼친 월드투어 ‘얼라이브 갤럭시 투어’에는 세계적인 공연기획사 라이브네이션이 참여했다. 공연의 총감독은 마이클 잭슨, 레이디 가가, 비욘세와 작업한 무대 연출가 로리앤 깁슨, 무대·조명 디자인은 마돈나, 폴 매카트니, 이글스와 호흡을 맞춘 리로이 베넷, 음향은 에미넴, 제이지, 린킨파크와 일한 케네스 반 드루텐이 담당했다.
깁슨 감독은 빅뱅에 대해 “알리샤 키스, 퍼프 대디 등 수많은 아티스트와 함께 했는데 빅뱅을 보고 새로운 감명을 받았다”며 “빅뱅은 빈티지적인 요소와 미래적인 요소를 모두 가진 특별한 매력이 있다. 전세계 슈퍼스타에 버금간다”고 칭찬했다.
지난해 투애니원의 글로벌 투어는 마이클 잭슨의 안무가였던 트래비스 페인이 연출을 맡고 팝스타 비욘세 투어 밴드의 리더 디비니티 록스, 세계적인 무대 디자이너 마이클 코튼이 참여했다.
안무와 스타일링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소녀시대 ‘아이 갓 어 보이’의 춤은 세계적인 안무팀 내피탭스와 안무가 리노 나카소네, 질리언 메이어스 등이 공동으로 완성했다.
앞서 비스트가 어셔,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안무를 전담한 안무가 AJ, 지나가 비욘세, 레이디 가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안무를 담당해온 플렉스에게 춤을 배웠다.
패셔니스타로 불리는 투애니원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제레미 스캇과 여러 차례 일하며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지난달 미국 MTV는 스타일리시한 밴드를 선정한 ‘베스트 밴드 스타일(Best Band Style of 2012)’ 명단에 투애니원을 거론하며 “(글로벌 투어에서 의상을 전담한) 제레미 스캇과의 작업을 통해 대담하면서도 화려한 패션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또 4인조 다국적 걸그룹 타이니지는 이달 두번째 싱글 발표를 앞두고 미국 힙합그룹 파이스트 무브먼트의 스타일리스트와 작업했다고 밝혔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의 박성현 박사는 “K팝은 내수 시장의 불안정성으로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는 측면이 있다”며 “그로 인해 작사, 작곡, 안무, 비주얼, 프로듀싱 등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인재를 활용해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것이다”고 분석했다.
◇K팝 경쟁력 ‘레벨 업’..K팝과 해외의 ‘니즈’ 충족돼 = 해외 ‘인재 풀(Pool)’과 손잡는 흐름이 가속화된 배경으로 K팝 콘텐츠의 경쟁력 상승이 첫손에 꼽힌다.
지난해 10-11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중국과 일본, 대만, 태국, 미국, 브라질,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9개국 총 3천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차 해외 한류조사 결과 한류를 대표하는 콘텐츠로 K팝이 선정됐다. 1차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한 드라마는 2위로 밀려났다.
흐름을 반영하듯 미국 빌보드와 MTV,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언론들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돌풍 이후 K팝 가수들의 소식을 다량으로 쏟아내고 있다. 현지 매체에 소개되기 위해 자체적인 프로모션을 펼치지 않아도 K팝 가수들의 국내외 활약상이 영미 팝 콘텐츠들과 나란히 소개되고 있는 것.
포미닛, 비스트의 소속사인 큐브엔터테인먼트 해외사업팀의 이연수 씨는 “해외 유력 매체들은 과거 한류의 경제적인 효과, K팝의 시스템적인 측면 등 특수한 상황만 간간이 다뤘지만 이젠 더 파고들어 개별 아티스트와 음악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룬다”며 “언론의 변화처럼 해외 아티스트의 활발한 참여도 K팝의 세계 시장 경쟁력이 ‘레벨 업’ 됐다는 걸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도 “해외 뮤지션들과 작업해보면 이제는 서로의 크리에이티브를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우린 미국 MTV를 보며 영향을 받았지만 이제 세상의 흐름을 읽는 감각과 트렌드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때론 빠르기도 한데 지드래곤과 작업한 디플로가 현재 미국에서 프로듀서로 ‘핫’하고 투애니원이 데뷔 시절부터 손잡은 스캇의 신발은 지금 미국 래퍼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협업에는 K팝 가수들과 해외 아티스트 사이의 ‘니즈’가 맞아떨어졌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큐브엔터테인먼트 홍승성 대표는 “K팝 가수들은 해외 아티스트와 작업한 콘텐츠로 세계 시장에 진입하는 시간을 줄이려는 니즈, 해외 아티스트는 아시아에서 가장 활성화된 K팝과 협업해 아시아 시장의 잠재력을 타진하려는 니즈가 서로 충족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YP엔터테인먼트 황준민 과장도 “K팝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 현지 아티스트와의 헙업은 시장 진입의 속도, 주목도에서 효과적이다”며 “반대로 해외 가수가 국내 시장에서 활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교류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조회수 11억 건을 돌파했듯이 세상은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더욱 빠르게 열릴 것이므로 한층 수준 높은 글로벌한 콘텐츠를 만드는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한 교류를 통해 생산된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가 K팝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도 나타냈다.
양현석 대표는 “해외 스태프와 연주자들이 참여한 빅뱅의 월드투어는 리스크도 있었지만 단순히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진행했다”며 “단편적인 한류 공연이 아니라 K팝 공연의 수준이 높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빅뱅에겐 효과적인 프로모션이 됐고 이러한 콘텐츠가 쌓일 경우 K팝 콘텐츠가 세계적인 수준이란 이미지를 심어주는 선순환 구조가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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