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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리개’는 잊혀진 한 사건을 일깨운다. 한 여배우가 사회 유력 인사들에게 성상납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성상납을 받은 리스트가 떠돌면서 잠시 세상은 시끄러운 듯했지만 경찰의 수사와 검찰의 기소, 사법부의 재판을 거치면서 처음 거론됐던 이름들은 슬그머니 사라졌고 점점 대중의 뇌리에서도 잊힌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최승호 감독은 처음부터 고(故) 장자연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 도입부에는 ‘영화에 나온 인물과 사건은 모두 실제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현실의 소재를 가져와 허구를 뒤섞어 그린 영화가 나중에 법적인 문제가 될 소지를 대비한 것인 듯하다.

그럼에도 영화는 실제 일어난 사건과 겹치는 이미지들을 늘어놓으며 현실의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목소리를 띤다. 저예산영화치고는 짜임새 있는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이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인다.

영화는 법정 공판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배우 정지희(민지현 분)가 자살한 뒤 그녀에게 성접대를 강요한 혐의로 소속사 대표인 차정혁(황태광)과 성접대를 받은 영화감독, 유력 언론사 사주(기주봉) 등이 고소된다.

하지만 변호인 측의 교묘한 회피와 변론으로 피고인들의 혐의는 쉽게 입증되지 않는다. 유일한 목격자인 같은 소속사 여배우 ‘고다령’ 마저 해외로 나가 증인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열혈 기자 이장호(마동석)는 정지희가 성상납 대상 리스트를 적은 다이어리를 찾으려 애쓴다. 담당 여검사 김미현(이승연)은 고다령을 설득하기 위해 애쓰며 힘겨운 법정 공방을 이어간다.

영화는 신인 여배우가 성상납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를 보여준다. 회사에서 빠져나오려면 수십 배의 위약금을 물어내야 하는 상황이나 일을 따내기 위해 유력 인사들에게 몸까지 바쳐야 하는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신인 여배우들이 얼마나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 엿보게 한다.

아울러 이 영화는 법정 드라마의 형식을 취해 가해자들이 진실을 덮으려 하는 추악한 행태와 피해자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을 대비시키며 관객의 공분을 일으킨다.

특히 마지막 선고 공판에서 판사가 최후 증거 채택을 거부하고 가해자에게 불리한 공소 사실 변경을 허락하지 않는 등 사법부가 가해자의 편에 치우진 모습은 영화 ‘부러진 화살’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영화는 중반부까지 평이한 회상과 증언이 주를 이루며 특별한 사건의 고리를 보여주지 못해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다.

또 ‘성상납’이란 소재가 내포한 선정성을 이 영화 역시 피해가지 못한 점도 아쉽다. 사건을 되도록 묵직하게 다루려 한 노력은 엿보이지만 중간 중간 들어간 성접대 장면은 꼭 필요한 것이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특히 마지막의 룸살롱 장면에 들어간 변태적인 성행위 장면은 거부감마저 일으킨다. 이런 극단적인 설정은 영화가 개봉된 이후 논란을 일으킬 여지도 있어 보인다.

18일 개봉. 상영시간 96분. 청소년 관람불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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