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온 편지’의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 결핍돼 있다. 라셸에게는 엄마의 관심이 필요하지만 엄마는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일에 서투르다. 콜레트와 미셸은 매일 밤 등을 돌리고 잘 만큼 애정이 식어 있다. 발레리에게는 아빠가, 카테린에게는 남편이 없다. 라셸이 동경하는 소녀 마리나 캉벨은 엄마를 잃었다. 콜레트의 환자는 암으로 시력을 잃게 될 처지다.
그러나 카린 타르디외 감독은 결핍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결핍은 이들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서로를 보듬는 계기가 된다. 라셸은 쾌활한 발레리를 통해 9살 꼬마의 사랑스러움을 되찾는다. 미셸이 카테린에게 이성의 감정을 가지면서 미셸과 콜레트는 자신들의 사랑을 되돌아본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라셸의 시점에서 전개되지만 자라나고 변화하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무언가 부족한 삶을 받아들이고 직시하면서 이들은 조금씩 성숙해진다. 감독은 자칫 상투적이고 관습적으로 흐를 수 있는 내용을 편집의 묘를 통해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영화는 지난해 ‘민들레’라는 제목으로 부산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작품이다. ‘타인의 취향’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감독 겸 배우 아녜스 자우이의 출연으로 주목을 받았다. 알랭 레네 감독의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에 출연했던 드니 포달리데와 잉그리드 버그먼의 딸로 잘 알려진 상담 교사 역의 이사벨라 로셀리니도 호연을 보여 준다. 하지만 이런 쟁쟁한 배우들 틈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건 6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주연 자리를 차지한 쥘리에트 공베르와 아나 르마르샹의 사랑스러운 연기다. 선생님 몰래 책상 밑에 숨고, 엄마의 커다란 브래지어를 입은 채 까불거리는 두 소녀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남는다. 8일 개봉. 89분. 12세 관람가.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