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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도감, 간결한 탐구심, 봉준호·송강호

영화 ‘설국열차’가 9일 개봉 10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할 전망이다. 이는 ‘도둑들’, ‘아이언맨 3’와 동일한 기록으로 본격적인 1000만 돌파의 시동을 걸었다. 앞서 지난 6일에는 역대 최단 기간인 개봉 7일 만에 400만 관객을 넘는 기록을 세웠다. 이 같은 초고속 흥행은 책임투자사인 CJ E&M은 물론 영화 관계자들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국내 최고 제작비인 450억원이 투입된 ‘설국열차’는 평단의 호평은 받았지만 대중적인 흥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많았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철학적이고 어려운 메시지, 중장년층에 친숙하지 않은 외화적인 색채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2주차에 접어든 평일에도 주말 스코어에 맞먹는 30만~40만명의 관객이 들면서 업계의 우려를 완전히 씻어냈다. ‘설국열차’가 ‘3대 장애’를 뛰어넘은 배경을 짚어봤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영화 ‘설국열차’
→‘설국열차’는 폐쇄적인 열차 안이 공간적인 배경이기 때문에 화면이 어두워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일부 잔인한 묘사는 영화를 무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열차의 속도감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는 이 같은 느낌을 상쇄시켰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설국열차’는 ‘살인의 추억’처럼 완급 조절이 강하지 않고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주제 의식, 문제 의식을 엄청난 속도감으로 밀고 나간다”면서 “그 원동력은 드라마의 힘이고 그것이 몰입도로 이어진 것이다. 어둡지만 봉준호의 실험이 통한 것”이라고 말했다.

CJ E&M의 관계자는 “개봉 이후 예상보다 잔인하거나 어둡다는 평가가 적었고 봉준호 감독만의 특이한 색깔로 인식하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특히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면서 자체 노이즈 마케팅을 형성해 직접 보고 평가하겠다는 관객들이 늘어나는 상황이 흥행에 득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국열차’의 또다른 걸림돌 중 하나는 다소 어렵고 철학적인 메시지였다. 각자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가 있고 그것이 곧 질서라고 외치는 메이슨(틸다 스윈튼)의 대사처럼 각 칸은 사회의 계급을 상징하고, 꼬리칸에서 맨 앞칸으로 한 칸씩 문을 부수고 나가는 것은 계급에 대한 투쟁을 의미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설정이 간명해 이해하기 쉬웠다는 평가도 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은유적인 표현이 많아 난해했던 봉 감독의 전작 ‘마더’에 비해 ‘설국열차’는 영화가 문을 부수고 앞칸으로 가야 한다는 알레고리로 움직이다 보니 훨씬 더 간명하고 심플한 명제로 인식된다”면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공분하는 것은 오히려 보편적인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이 영화가 ‘도둑들’, ‘7번방의 선물’ 등 여타 1000만 영화에 비해 40~50대 관객층이 높고 1년에 한두 편씩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CJ E&M 측은 “철학적인 성향이 강하고 어려운 영화라는 이미지는 오히려 중장년층 관객의 지적 갈증을 해소하고,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이미지 때문에 꼭 봐야 하는 ‘이슈 무비’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찬일 평론가는 “대박 영화 중에 확실한 주제 의식이나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운 경우는 드물지만 ‘설국열차’는 관객들보다 반 발짝 앞서가면서 그들의 지적인 허기를 충족시켰다. 이는 최근 사회의 인문학 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설국열차’의 홍보 대행사인 앤드크레딧의 손효정 팀장은 “봉 감독은 디테일이 뛰어나기로 유명해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는 관객이 많아 재관람률이 높다”고 밝혔다.

→외화는 통상 정서적인 이질감 때문에 중장년층의 외면을 받기 쉽다. ‘설국열차’는 크리스 에번스, 에드 해리스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영어 대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등 외화적 색채가 강하지만 봉준호의 브랜드 효과로 이를 돌파했다. 이 영화는 10대 자녀를 동반한 40대 이상의 부모 등 가족 관객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30대 중후반 남성이던 봉 감독의 팬층이 넓어진 것이다. 영화계 관계자는 “교육적인 취지로 자녀와 극장을 찾은 부모 세대도 많았다. ‘괴물’, ‘살인의 추억’ 등으로 이어진 봉준호-송강호 콤비에 대한 신뢰가 예상보다 컸다”고 말했다.

극중에서 송강호가 통역기를 써가며 한국어를 구사하는 데 대한 관심도 높다. 이창현 CJ E&M 홍보부장은 “봉준호 감독이 자신만의 색채를 잃지 않고 할리우드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영화를 만든 데다 전세계인들이 보게 될 영화에 송강호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를 쓴다는 사실에 호감을 느끼는 관객들이 많다. ‘설국열차’의 해외 반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은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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