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못해도 괜찮아, 내겐 완벽한 부모니깐…

손재주 있고 부지런하지만 냉이와 잡초도 구분하지 못해 엄마의 핀잔을 듣곤 하는 아빠, 그리고 그 못지않게 부지런한 데다 야무지며 빈틈없는 또순이 엄마. 여기에 딸 하나, 아들 하나. 한국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가족 구성원의 모습이다. 다만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아빠와 엄마가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아이들은 건청인.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 부엌 불 위 압력밥솥이 칙칙거리고, 밥그릇에 숟가락이 달그락거리고, 텔레비전은 소리 대신 자막을 전한다. 그 사이사이에 손짓과 몸짓, 표정을 동원한 바쁜 수다가 단절음과 함께 이어진다.

부모는 갓 태어난 아이 옆에서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스스로 듣지 못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아이의 표정을 보고 안심하며 또 감탄했다.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는 입이 아닌 손으로 옹알이를 했다. 조금 자란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엄마, 아빠의 입과 귀가 됐다. 은행에 전화해 빚이 얼마인지 물어야 했고, 왜 자신이 부모 대신 전화해야만 했는지를 낯선 이에게 말해야 했다. 혹은 철없는 또래 악당들에게 놀림받고 속앓이하면서 더 공부를 잘하고, 더 착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줘야 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실제로) 빨리 어른이 되었다”는 말은 간절한 바람이었고 가슴 아린 성취였다.

다큐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청각장애 부모의 삶, 그들과 함께 지내며 훌쩍 자란 자식의 삶을 덤덤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아빠는 2층짜리 집을 짓는 게 꿈이다. 1층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진 아들에게 카페를 내주고, 2층에서 유유히 전원생활을 누리고 살겠다는 소망이다. 엄마는 스무 살 넘은 아들을 뭐 그리 걱정하느냐며, 언제까지 젖을 줘야 하느냐고 아빠를 타박하면서도 그 꿈을 오롯이 함께 가꾸고 있다. 작품 후반부 노래방에서 엄마는 ‘애모’를 부르고, 아빠는 곁에서 열심히 따라 부르며 탬버린을 친다. 음치, 박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감정을 담뿍 담아 부르는 부모의 모습은 영화를 찍고 내레이션까지 맡은 큰딸 이길보라 감독이 말한 것처럼 ‘그 자체로 완전하고 견고한 그들의 세상’을 상징한다.

영화의 서사와 주제 의식은 아빠, 엄마가 젊은 시절부터 꼼꼼히 찍어 놓은 결혼 및 육아 동영상과 사진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결혼 전날 함을 팔고 사며 벌이는 침묵 속 흥정, 신혼여행 떠나는 기차 속 아빠, 엄마의 앳된 모습, 직접 들려주지 못해 틀어 놓은 기계음의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어린 딸 등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작품을 완결 짓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아빠와 엄마는 등장인물로서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기실 공동 연출, 촬영한 공동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평단의 호평 속에 여성인권영화제 관객상, 장애인영화제 대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 등을 잇따라 받았다. 23일 개봉. 전체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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