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근하게 끓여낸 우리네 이야기들

최근 방송계에 ‘먹방’ ‘쿡방’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스크린에도 그 열기를 이어 갈 만한 작품이 등장했다. 일본 영화 ‘심야식당’이다. 일본 도쿄 번화가의 뒷골목에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만 운영하는 선술집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일본에서만 누적 판매 240만부를 기록한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일본에서 편당 30분짜리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시즌 3까지 제작됐다. 2시간으로 압축된 영화는 드라마보다 더 숙성되고 단단해졌다. 영화의 중심을 잡고 가는 이는 심야식당의 주인인 마스터(고바야시 가오루)다. 얼굴엔 칼자국이 나 있고 과거를 통 알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는 언제나 손님들에게 묵묵히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다.

이 선술집에는 문어 소시지, 계란말이 등 조리법이 간단한 음식을 판매하고 술은 3잔까지 취하지 않을 만큼만 마실 수 있다는 원칙이 있다. 하지만 마스터는 손님에 따라 메뉴에 없는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술을 몇 잔씩 더 권하기도 한다.

이 작은 선술집은 말 못할 고민을 가진 소시민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공간이다. 영화는 나폴리탄(계란을 철판에 깔아 내는 면 요리), 마밥, 카레라이스 등 세 가지 음식을 통해 사랑의 의미, 고향에 대한 그리움, 누군가에 대한 감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간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며 비로소 경계를 풀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는다. 물론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관객에게는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담백하면서도 장인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음식처럼 소박하지만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네 이웃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담아 냈다. 일본의 톱스타 오다기리 조도 작은 파출소의 엉뚱한 경찰 고구레 역을 맡아 소박한 연기를 펼친다.

일본의 국민 배우로 불리는 고바야시는 지난 8일 방한 인터뷰에서 “영화에 자극적인 장면은 없지만 우리가 친구나 연인, 가족과 겪는 일상이 진정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래서 화려한 음식보다는 소박한 가정 요리가 많이 등장하며 그들이 어떻게 음식으로 마음을 채우고 새 출발을 하느냐가 영화의 포인트”라고 말했다.

영화 속 마스터는 표정 변화 없이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영화에는 원작과 달리 그의 일상을 엿보게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고바야시는 연기의 포인트에 대해 “마스터는 주로 본인의 존재감을 감추고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역할이기 때문에 거리를 두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표정일 수밖에 없다. 말은 없지만 마치 선물처럼 음식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3편의 드라마는 물론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아 6년에 걸쳐 마스터 역을 연기하고 있는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요리를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속 음식 가운데 기본 메뉴인 돈지루(일본 가정식 돼지고기 수프)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한국 음식으로는 부산에서 맛본 아귀찜을 첫손에 꼽았다. 18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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